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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에스터, 페트병이 운동화로

by MARIA’S CLOSET 2026. 10. 22.

운동화 안쪽의 소재 라벨을 들여다본 적이 있을까.

요즘 운동화의 윗부분은 가죽이나 일반 원단 대신 실로 짠 니트 소재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실의 이름은 대부분 폴리에스터다.

지난 친환경 니트 실 이야기에서는 전 세계 섬유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폴리에스터가 차지하고, 재활용 폴리에스터의 상당량이 페트병에서 온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조금 신기하다.

물을 담았던 플라스틱병이 어떻게 발을 감싸는 부드러운 운동화가 될 수 있을까.

오늘은 그 폴리에스터가 신발이 된 이야기다. 1941년 영국에서 시작된 실의 역사부터 나이키 플라이니트, 그리고 쓰레기로 만든 운동화 스페이스 히피까지 따라가 보려고 한다.

1. 1941년, 영국에서 태어난 실

폴리에스터는 석유에서 얻은 원료를 화학적으로 가공해 만드는 합성섬유다.

우리가 입는 폴리에스터 옷과 생수 페트병은 생각보다 가까운 사이에 있다.

둘 다 PET(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라는 플라스틱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PET를 녹여 아주 가느다란 구멍으로 뽑아내면 실이 되고, 병 모양으로 가공하면 페트병이 된다. 다만 섬유용과 병용 PET는 요구되는 물성이 달라 제조 조건도 다르다.

이 소재의 역사에는 영국의 두 화학자가 등장한다.

1941년, 존 렉스 윈필드와 제임스 테넌트 딕슨은 섬유로 사용할 수 있는 PET 계열 폴리에스터를 개발하고 특허를 출원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탓에 연구 성과는 곧바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1946년에는 '테릴렌(Terylene)'이라는 이름과 함께 새로운 섬유에 관한 연구가 공개됐다.

이후 영국 ICI와 미국 듀폰이 각각 테릴렌과 데이크론(Dacron)이라는 이름으로 폴리에스터 섬유를 상업화했다.

처음에는 새로운 합성섬유에 불과했던 소재가 오늘날 운동복부터 가방, 운동화까지 거의 모든 곳에 쓰이게 된 것이다.

2. 신발에 폴리에스터를 쓰는 이유

운동화는 생각보다 가혹한 환경에서 사용된다.

하루에도 수천 번씩 구부러지고, 땅에 쓸리고, 비와 땀에 젖는다. 그러면서도 가벼워야 하고 발을 잘 잡아 줘야 한다.

폴리에스터가 운동화 소재로 널리 사용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첫째, 튼튼하다.

폴리에스터 섬유는 강도가 높고 마찰에 비교적 강하다. 발등처럼 반복적으로 접히는 부분에도 사용할 수 있다. 물론 실제 내구성은 실의 굵기와 조직, 보강 설계에 따라 달라진다.

둘째, 빨리 마른다.

폴리에스터는 면에 비해 물을 적게 흡수한다. 땀이나 비에 젖어도 섬유 자체가 머금는 수분이 적기 때문에 비교적 빨리 마른다.

셋째, 열로 형태를 안정시킬 수 있다.

폴리에스터는 열가소성 소재다. 적절한 온도에서 열을 이용해 형태를 잡는 열세팅이 가능하다. 니트 조직을 발 모양에 맞게 만들고 열과 보강 구조를 함께 활용하면 신발의 형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넷째, 필요한 만큼 신축성을 설계할 수 있다.

폴리에스터 실 자체는 탄성이 아주 큰 소재는 아니다. 하지만 니트로 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조직과 실의 배치에 따라 잘 늘어나는 부분과 발을 단단히 잡아 주는 부분을 만들 수 있다.

다섯째, 다양한 색과 표현이 가능하다.

선명한 색부터 은은한 색까지 폭넓게 표현할 수 있고, 적절한 염색과 가공을 거치면 좋은 색상 견뢰도를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면으로 운동화를 만들면 안 될까.

물론 면 소재 운동화도 있다. 대표적으로 캔버스화가 그렇다.

다만 면은 물을 많이 흡수하고 건조가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부드러운 촉감과 자연스러운 질감이 장점이다.

가방도 마찬가지다. 가볍게 들고 다니는 캔버스 에코백에는 면이 잘 어울린다. 비에 자주 노출되거나 빠른 건조가 중요한 가방이라면 폴리에스터가 더 유리할 수 있다.

15년 동안 다양한 실과 소재를 다루면서 느낀 점이 있다.

좋은 소재와 나쁜 소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만드느냐에 따라 맞는 소재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3. 2012년, 신발을 실로 짜다. 나이키 플라이니트

2012년, 나이키는 운동화 제작 방식을 바꾼 기술을 선보였다.

바로 '플라이니트(Flyknit)'다.

기존 운동화는 여러 장의 원단을 재단하고, 필요한 부분을 이어 붙이거나 봉제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플라이니트는 신발 윗부분인 어퍼(Upper)를 실로 직접 짠다.

필요한 모양을 원단에서 잘라내는 대신, 처음부터 필요한 모양에 가깝게 편직하는 것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한 장의 니트 안에서 서로 다른 기능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발을 단단하게 잡아야 하는 부분은 촘촘하게, 통풍이 필요한 부분은 성글게, 유연하게 움직여야 하는 부분은 신축성이 있도록 짠다.

원단은 못 하는 니트의 기술에서 소개했던 바로 그 원리다.

폴리에스터 자체가 특별히 통기성이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실 사이의 공간과 니트 조직을 조절하면 바람이 통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이 니트 기술의 재미있는 부분이다.

같은 실을 사용해도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성질의 제품이 나온다.

그리고 이 기술에는 또 하나의 장점이 있었다.

바로 버려지는 원단 자투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나이키는 플라이니트의 정밀 편직 방식이 기존의 재단·봉제 방식과 비교해 원단 자투리 폐기물을 평균 약 60% 줄인다고 설명했다.

환경을 위해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것만큼, 처음부터 버리는 부분이 적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 사례다.

4. 2016년, 플라이니트 실을 재활용 폴리에스터로

플라이니트가 등장한 지 4년이 지난 2016년.

나이키는 플라이니트 신발에 사용하는 핵심 원사를 재활용 폴리에스터로 전환했다고 발표했다.

기존에는 석유에서 새로운 폴리에스터를 만들어 사용했다면, 이제는 버려진 플라스틱병을 재활용해 만든 실을 사용하는 것이다.

당시 나이키는 이러한 재활용 원사 사용을 통해 약 1억 8,200만 개의 플라스틱병이 매립지로 향하는 것을 막았다고 밝혔다.

그 숫자를 떠올리면 꽤 놀랍다.

우리가 마시고 버린 생수병이 잘게 부서지고, 세척되고, 다시 녹아 실이 된다. 그리고 그 실이 편직기를 지나 운동화의 윗부분으로 만들어진다.

물론 페트병을 실로 다시 만드는 과정에도 에너지와 물이 필요하다. 수거와 세척, 가공 과정에서 환경 부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재활용했다고 해서 환경 영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새로운 석유 원료의 사용을 줄이고, 버려진 자원을 다시 활용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플라이니트의 변화는 단순히 신발을 가볍게 만드는 기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셈이었다.

5. 2020년, 쓰레기로 만든 운동화. 스페이스 히피

2020년, 나이키는 조금 독특한 운동화를 선보였다.

이름은 '스페이스 히피(Space Hippie)'.

우주에서 새로운 재료를 구하기 어렵다면, 이미 가지고 있는 폐기물로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발상에서 출발한 실험적인 컬렉션이었다.

스페이스 히피는 처음부터 버려진 재료를 디자인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신발 윗부분에는 페트병뿐 아니라 버려진 티셔츠와 실 자투리 등을 재활용한 '스페이스 웨이스트 얀(Space Waste Yarn)'을 사용했다.

제품에 따라 원사의 재활용 폴리에스터 함량은 달랐다. 예를 들어 스페이스 히피 01과 02에는 재활용 폴리에스터가 약 90% 포함된 원사가 사용됐다고 나이키는 설명했다.

밑창과 쿠셔닝 소재에도 변화가 있었다.

공장에서 발생한 고무 자투리를 분쇄해 만든 나이키 그라인드(Nike Grind)를 폼 소재에 혼합했고, 일부 모델에는 다른 운동화를 만들고 남은 폼 자투리도 사용했다.

완성된 신발은 일반적인 운동화와 조금 달랐다.

회색 니트 표면에 색색의 실이 섞여 있었고, 밑창에는 재활용 소재의 작은 입자들이 점처럼 보였다.

원래라면 숨기거나 제거했을 법한 자투리의 흔적을 디자인의 일부로 보여 준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이 특히 재미있었다.

기존에는 소재의 표면을 최대한 균일하게 만드는 것이 품질 관리의 중요한 기준이었다면, 스페이스 히피는 재활용 소재가 가진 불규칙한 색과 질감을 하나의 디자인 언어로 사용했다.

쓰레기를 감추지 않고, 오히려 제품의 개성으로 만든 셈이다.

나이키는 스페이스 히피를 당시 자사 운동화 가운데 탄소발자국이 특히 낮은 컬렉션 중 하나라고 소개했다.

물론 이 신발이 환경 문제를 모두 해결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버려진 재료를 어떻게 새로운 제품의 가치로 바꿀 수 있는지 보여 준 흥미로운 시도였다.

6. 페트병은 운동화가 되었는데, 운동화는 다시 무엇이 될까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페트병을 재활용해 운동화를 만들었다면, 다 신은 운동화도 다시 운동화로 만들 수 있을까.

생각보다 쉽지 않은 문제다.

운동화 한 켤레를 자세히 보면 여러 소재가 들어 있다.

윗부분은 폴리에스터 니트이고, 밑창에는 고무가 들어간다. 발바닥의 충격을 흡수하는 중창에는 폼 소재가 사용되고, 신발끈과 접착제, 보강재까지 더해진다.

이 소재들을 깨끗하게 분리하기가 어렵다.

페트병처럼 비교적 단순한 소재로 이루어진 물건은 분리수거와 재활용 공정을 설계하기 쉽다.

하지만 운동화는 여러 소재가 복잡하게 결합된 제품이다.

그래서 재활용 폴리에스터로 만든 운동화라고 해도, 다 신은 뒤 다시 동일한 품질의 운동화로 재활용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 때문에 최근의 지속가능한 디자인에서는 처음부터 제품을 어떻게 분리하고 재활용할 것인지 고민하는 일이 중요해지고 있다.

접착제를 줄이거나, 사용 소재의 종류를 단순화하거나, 제품을 쉽게 분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물건을 만들 때 수명뿐 아니라 수명이 끝난 뒤까지 생각해야 하는 이유다.

7. 디자이너의 시선, 소재보다 만드는 방식

플라이니트를 보면 디자인의 출발점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원단을 펼쳐 놓고 필요한 모양을 오려 냈다. 남은 조각은 버려졌다.

플라이니트는 처음부터 필요한 모양에 가깝게 실로 짠다.

버리는 것을 줄이는 방법을 소재뿐 아니라 만드는 방식에서 찾은 것이다.

가방을 디자인할 때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

같은 크기의 가방이라도 패턴을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원단 소요량이 달라진다. 봉제선을 하나 줄이면 공정이 단순해지고, 불필요한 부자재를 덜 사용할 수도 있다.

니트는 조금 더 특별하다.

실의 굵기와 편직 조직을 바꾸는 것만으로 형태와 기능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니트도 편직 과정의 불량이나 재단, 마감 과정에서 폐기물이 발생한다. 무조건 친환경적인 제작 방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어떤 기술을 사용하느냐보다 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폴리에스터도 마찬가지다.

석유에서 온 소재라는 이유로 무조건 피할 수는 없다.

비에 젖어도 빨리 마르고, 반복적으로 구부러지고 움직여야 하는 운동화에는 폴리에스터가 유용한 선택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분명해진다.

그 실을 어디에서 얻을 것인지, 얼마나 버리지 않고 사용할 것인지, 그리고 다 쓴 뒤에는 어디로 보낼 것인지.

8. 작은 팁, 우리가 버린 페트병이 다시 좋은 실이 되려면

페트병으로 운동화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알고 나니 집에서 버리는 생수병도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디자이너로 일하다 보면 같은 소재라도 원료의 품질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재활용 폴리에스터도 마찬가지다.

깨끗하게 분리된 페트병일수록 이물질을 제거하는 부담이 줄어들고, 품질 좋은 재활용 원료를 얻는 데 유리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1. 내용물을 비우고 가볍게 헹구기

음료가 남아 있지 않도록 깨끗하게 비운다. 특히 당분이나 다른 이물질이 남아 있는 병은 한 번 헹구는 것이 좋다.

2. 비닐 라벨 떼어 내기

페트병에 붙어 있는 비닐 라벨은 다른 재질인 경우가 많다. 라벨을 떼어 비닐류로 분리배출한다.

3. 병을 찌그러뜨리고 뚜껑 닫기

부피를 줄이도록 가볍게 압착한 뒤 뚜껑을 닫는다. 뚜껑은 재활용 처리 과정에서 재질에 따라 분리될 수 있다.

4. 무색 투명 페트병은 따로 모으기

생수나 음료를 담았던 무색 투명 페트병은 별도 수거 대상이다. 색이 있는 페트병이나 세제통, 플라스틱 컵과 구분해서 배출한다.

우리가 버린 페트병이 반드시 운동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페트병이 될 수도 있고, 옷이나 가방을 만드는 실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좋은 재활용 소재는 버리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디자이너는 좋은 소재를 골라 제품을 만든다. 그런데 재활용 소재의 첫 번째 품질 관리는 어쩌면 그 소재를 버리는 사람의 손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신은 운동화의 라벨을 한번 들여다보고, 다 마신 생수병의 라벨도 한번 떼어 보자.

우리가 버린 작은 페트병 하나가 언젠가 누군가의 운동화가 되어 다시 거리를 걸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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