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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니트 실, 리사이클의 진짜 이야기

by MARIA’S CLOSET 2026. 10. 15.

페트병에서 실이 되고, 헌 옷이 다시 옷이 되기까지

니트를 고르다 보면 라벨에서 자주 만나는 단어들이 있다. '리사이클', '친환경', '지속가능한 소재'.

페트병으로 만든 실도 있고, 바다에 버려진 어망으로 만든 실도 있다. 심지어 나무에서 얻은 원료로 만든 실도 있다. 이름만 들어도 꽤 근사하다. 버려진 페트병이 옷이 되고, 낡은 청바지가 다시 실이 된다니. 이제 우리가 입는 옷도 제법 친환경적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정말 우리가 입는 옷은 환경에 좋아지고 있는 걸까?

15년 동안 패션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수많은 원단과 실을 만났다. 새로운 소재는 해마다 등장하고, 기술도 놀라울 만큼 발전했다. 그런데 좋은 소재를 만드는 것과 그 소재가 실제로 환경에 도움이 되는 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다.

오늘은 친환경 실이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그리고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무엇인지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1. 우리가 사용하는 섬유의 절반 이상은 석유에서 온다

우리가 입는 옷은 무엇으로 만들어질까? 면, 울, 캐시미어처럼 익숙한 소재도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섬유는 폴리에스터다. 폴리에스터는 주로 석유를 원료로 만든 합성섬유다.

2025년 텍스타일 익스체인지(Textile Exchange)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섬유 생산량은 약 1억 3,200만 톤이었다. 그중 약 59%가 폴리에스터였다. 물론 이 수치에는 의류뿐 아니라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섬유도 포함된다. 그래도 우리가 사용하는 섬유의 상당 부분이 석유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재활용 폴리에스터는 얼마나 될까? 전체 폴리에스터 생산량의 약 12% 정도다. 생각보다 적다. 더 놀라운 건 재활용 폴리에스터의 약 98%가 페트병에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리사이클 니트'도 헌 옷보다는 페트병에서 시작된 재활용 실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페트병을 버리지 않고 옷으로 만드는 건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 옷을 다 입고 나면 어떻게 될까? 다시 실이 될 수 있을까?

아쉽게도 아직은 쉽지 않다. 사용한 옷과 섬유 제품을 다시 새로운 섬유의 원료로 만드는 비율은 전 세계 섬유 생산량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페트병이 옷이 되는 기술은 발전했지만, 옷이 다시 옷이 되는 순환은 아직 시작 단계인 것이다.

2. 페트병과 바다의 어망도 실이 된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소재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기업이 있다. 바로 효성티앤씨다. 2008년 페트병을 재활용한 폴리에스터 '리젠(regen)'을 개발했고, 버려진 어망을 활용한 재활용 나일론도 선보였다. 바다에 버려진 그물이 가방이 되고, 옷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소재가 있다. 바로 스판덱스다. 스판덱스는 옷을 쭉쭉 늘어나게 만드는 실이다. 레깅스나 속옷은 물론이고, 몸에 잘 맞는 니트에도 자주 사용한다. 효성티앤씨는 옥수수와 사탕수수에서 유래한 원료를 일부 활용한 바이오 기반 스판덱스도 개발했다. 석유에서 시작하던 실의 원료를 식물에서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식물로 만들었다고 무조건 친환경인 것은 아니다. 재배 과정에서 물과 땅을 사용하고, 실을 만드는 데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래도 원료를 바꿔 보려는 시도 자체는 흥미롭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바로 헌 옷을 다시 실로 만드는 것이다. 스웨덴에서 시작된 서큘로스(Circulose)는 낡은 청바지나 면 의류를 재활용해 새로운 섬유의 원료가 되는 펄프를 만든다. 이 펄프를 이용하면 비스코스 같은 재생 셀룰로오스 섬유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기술이 좋다고 사업까지 잘되는 것은 아니었다. 원래 이 기술을 개발했던 리뉴셀(Renewcell)은 2024년 파산했다. 이후 새로운 주인을 만났고, 2026년 4분기 생산 재개를 목표로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헌 옷을 재활용하려면 일단 옷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색깔과 소재별로 나누고, 지퍼와 단추를 떼어 내야 한다. 면과 폴리에스터가 섞여 있다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옷 한 벌을 다시 실로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기술뿐 아니라 옷을 수거하고 분류하는 시스템까지 함께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다.

3. 나무로 만든 실, 텐셀과 모달

친환경 소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텐셀이다. 그런데 텐셀은 정확히 무엇일까?

사실 텐셀(TENCEL™)은 섬유의 종류가 아니라 오스트리아 렌징(Lenzing)사의 브랜드 이름이다. 이 브랜드에서 대표적으로 만날 수 있는 소재가 라이오셀과 모달이다.

라이오셀은 나무에서 얻은 펄프를 녹여 만든 섬유다. 렌징의 텐셀 라이오셀은 이 과정에서 사용하는 용제를 99% 이상 회수해 다시 사용한다. 이렇게 자원을 회수해 반복해서 사용하는 방식을 '닫힌 순환'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하면 실을 만들 때 사용한 용제를 버리지 않고 다시 사용하는 것이다.

라이오셀은 촉감이 매끄럽고 부드럽다. 피부에 닿으면 시원한 느낌도 있어 봄가을 니트나 울 혼방 소재로 활용하기 좋다. 렌징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면 의류 생산 과정에서 나온 자투리나 폐면직물을 재활용하는 REFIBRA™ 기술도 개발했다. 새로운 나무 펄프에 재활용 면 원료를 함께 사용하는 방식이다.

속옷은 꼭 면이어야 할까?


어릴 때 엄마는 늘 말씀하셨다. "속옷은 무조건 면으로 입어야 해." 그때는 그냥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 속옷을 보면 텐셀 모달이라는 소재가 자주 보인다.

모달은 주로 너도밤나무에서 얻은 펄프로 만든 섬유다. 면처럼 땀을 잘 흡수하면서도 매끄럽고 부드러운 촉감이 특징이다. 여기에 스판덱스를 조금 섞으면 몸에 편안하게 밀착되는 속옷을 만들 수 있다.

물론 모달이라고 면보다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피부에 닿는 느낌도 다르고, 원단의 두께와 짜임에 따라 착용감도 달라진다. 피부가 예민하다면 면이 더 편할 수도 있다.

엄마가 면 속옷을 고집하던 시절에서 나무로 만든 섬유를 입는 시대까지. 생각해 보면 우리가 매일 입는 속옷 한 장에도 꽤 많은 소재 기술이 숨어 있다.

4. 실험실에서 만들어지는 미래의 실

나무로 실을 만드는 것도 신기한데, 이제는 미생물로 실의 원료를 만드는 기술까지 등장했다. 일본의 스파이버(Spiber)라는 기업 이야기다.

스파이버는 미생물을 발효시켜 단백질 소재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했다. 거미줄의 단백질 구조에서 영감을 받은 연구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후 여러 종류의 단백질 소재로 기술을 확장했다. 실제로 패션 브랜드와 협업해 옷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에도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바로 생산 비용이다. 실험실에서 새로운 소재를 만드는 것과 그 소재로 수십만 벌의 옷을 만들 만큼 대량생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공장도 필요하고, 설비도 필요하다. 기존 소재와 경쟁할 수 있을 만큼 가격도 낮춰야 한다. 스파이버 역시 대규모 생산과 자금 조달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2026년 3월에는 재무구조를 조정하는 절차에 들어간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런 사례를 보면 생각이 많아진다. 좋은 기술이 반드시 좋은 제품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환경을 생각한 실이라도 너무 비싸서 사용할 수 없다면 널리 보급되기 어렵다. 결국 친환경 소재가 일상으로 들어오려면 기술뿐 아니라 가격과 생산 안정성까지 해결해야 한다.

5. 새로운 실을 만드는 것보다 덜 버리는 방법

친환경 니트를 이야기하면서 소재만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니트에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바로 만드는 방식이다.

일반적인 옷은 넓은 원단 위에 패턴을 올려놓고 필요한 모양대로 잘라 만든다. 이 과정에서 자투리 원단이 생긴다. 반면 니트는 처음부터 필요한 모양에 맞춰 짤 수 있다. 물론 모든 니트가 그런 것은 아니다. 니트 원단을 짜서 일반 의류처럼 잘라 만드는 제품도 있다. 하지만 형태에 맞춰 짜는 방식을 사용하면 버려지는 원단을 줄일 수 있다.

대표적인 기술이 일본 시마세이키의 홀가먼트(WHOLEGARMENT)다. 보통 니트는 앞판, 뒤판, 소매를 따로 짠 다음 연결한다. 홀가먼트는 이 과정을 줄여 기계에서 옷 한 벌을 통째로 짜낸다. 마치 실 한 가닥으로 옷을 완성하는 것처럼 말이다. 재단 과정에서 생기는 자투리를 줄이고 봉제 공정도 단순하게 만들 수 있다.

나는 이런 기술도 친환경 소재 개발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실을 만드는 것도 좋지만, 이미 가진 실을 덜 버리는 방법을 찾는 것. 어쩌면 더 현실적인 친환경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6. 옷을 버리는 비용도 만드는 회사가 낸다면?

유럽에서는 옷을 만드는 회사의 책임도 점점 커지고 있다. 2025년 유럽연합은 섬유 폐기물에 대한 생산자 책임을 강화하는 법 개정을 확정했다.

쉽게 말하면 이런 것이다. 옷을 만들어 판매한 기업이 그 옷을 버릴 때 발생하는 수거와 분류, 재활용 비용까지 책임지도록 하는 제도다. 지금까지는 옷을 판매한 뒤의 일이 소비자와 폐기물 처리 시스템의 몫이었다면, 앞으로는 만드는 기업도 그 비용을 함께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재활용하기 쉽고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제품에 유리한 부담금 체계를 마련하는 방향도 포함되어 있다.

아직 국가별로 제도를 구체화하고 시행해야 하는 과정이 남아 있지만, 방향은 분명해 보인다. 이제는 옷을 얼마나 잘 파느냐뿐 아니라, 다 입고 난 옷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디자이너에게도 새로운 숙제가 생긴 셈이다.

7. 15년 차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좋은 실

니트를 디자인하다 보면 혼방 실을 정말 많이 사용한다. 울에 나일론을 섞으면 내구성을 보완할 수 있고, 아크릴을 섞으면 가격을 조절하기 좋다. 스판덱스를 넣으면 신축성이 생겨 핏을 잡는 데 도움이 된다. 디자인하는 입장에서는 꽤 유용한 조합이다.

그런데 재활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러 종류의 섬유가 섞일수록 다시 분리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특히 서로 다른 섬유가 촘촘하게 섞인 실은 재활용 과정이 복잡하다.

그래서 요즘은 좋은 실을 고를 때 한 가지를 더 생각하게 된다. 이 옷은 다 입고 나면 어디로 갈까? 울 100%, 면 100%처럼 한 가지 소재로 만든 옷은 일반적으로 소재를 분류하고 재활용하기에 유리하다. 물론 단일 소재라고 모두 재활용되는 것은 아니다. 염색이나 가공 방식, 실제 수거 시스템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그리고 혼방이라고 무조건 나쁜 옷도 아니다. 조금 섞인 나일론 덕분에 옷이 더 튼튼해지고 오래 입을 수 있다면, 그 역시 충분히 의미 있는 선택일 수 있다. 결국 친환경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좋은 옷과 나쁜 옷을 나누기는 어렵다. 실의 원료도 중요하고, 만드는 과정도 중요하다. 얼마나 오래 입을 수 있는지, 다 입은 뒤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지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친환경 실의 개발은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페트병이 실이 되고, 버려진 어망이 옷이 되고, 낡은 청바지가 다시 섬유의 원료가 된다. 미생물로 단백질 소재를 만드는 시대까지 왔다. 그런데 아직 우리가 입는 옷이 다시 옷이 되는 순환은 아주 작은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나는 결국 가장 기본적인 이야기로 돌아오게 된다. 오래 입을 수 있게 만들고, 오래 입는 것.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옷장 속에 있는 니트 한 벌을 한 해 더 꺼내 입는 일도 중요하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가장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친환경은 거창한 신소재가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옷을 조금 더 아끼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출처

※ 기업의 생산 계획과 재무 상황은 2026년 보도 내용을 기준으로 작성했으며, 실제 진행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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