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로 옷을 만든다고 하면 대부분 고개를 갸웃한다. 비가 오면 찢어지지 않을까, 빨면 풀어지지 않을까.
지난 글에서 니트 실의 종류를 정리하면서 종이실을 잠깐 소개했다. 종이를 가늘게 잘라 꼬아 만든 실이다. 그런데 찾아볼수록 이야기가 길었다. 일본에는 천 년 넘게 종이옷을 입어 온 역사가 있고, 우리나라에는 한지로 실을 만드는 기술이 있다.
오늘은 종이로 짠 옷, 일본의 와시와 한국의 한지 이야기다.
1. 종이가 어떻게 실이 될까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얇은 종이를 리본처럼 길고 가늘게 자른 뒤, 그 띠를 꼬아서 실로 만든다.
비밀은 종이의 원료에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종이는 나무 펄프로 만들어 섬유가 짧다. 반면 와시와 한지는 닥나무 같은 식물의 껍질로 만든다. 섬유가 길고 질겨서, 가늘게 잘라 꼬아도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손으로 찢어 보면 섬유가 털처럼 길게 늘어지는 게 보인다.
이렇게 만든 종이실은 가볍고, 바삭하고, 형태를 잘 잡는다. 그래서 여름 모자나 가방, 시원한 여름 옷에 잘 어울린다.
2. 천 년 전부터 종이옷을 입은 일본
일본에는 종이로 만든 옷이 두 가지 있었다.
가미코(紙衣) 는 종이 자체를 옷감처럼 쓴 옷이다. 종이를 손질하고 여러 번 구기고 주물러 천처럼 부드럽게 만든 뒤 옷을 지었다. 헤이안 시대 중반부터 승려들이 입기 시작했고, 이후 무사와 배우, 하이쿠 시인 바쇼도 입었다. 에도 시대에는 평범한 사람들도 널리 입었다.
시후(紙布) 는 종이로 실을 만들어 짠 천이다. 날실과 씨실을 모두 종이실로 짜기도 하고, 날실은 면이나 비단으로, 씨실만 종이실로 짜기도 했다. 기모노 한 벌을 짜는 데 종이 약 50장이 들었다고 한다.
시후로 유명한 곳이 미야기현의 시로이시다. 맑은 산골 물과 질 좋은 닥나무, 눈이 많고 맑은 겨울이 좋은 종이를 만들었다. 에도 시대 말에는 그 지역 무사 집안들이 부업으로 고운 시후를 짰고, 이것이 영주들에게 선물로 보내지면서 이름을 알렸다. 한때 사라질 뻔했던 이 기술은 1940년대에 되살아나 지금까지 몇몇 장인이 이어 가고 있다.
3. 지금 일본의 와시 실
지금 일본에서는 와시 실이 니트 스웨터, 스톨, 양말, 가방, 여름 모자까지 꽤 다양한 제품이 되었다.
과정을 보면 손이 많이 간다. 한 일본 브랜드는 시코쿠에서 만든 아주 얇은 와시를 폭 1.2~1.5mm로 자르고, 여러 번 꼬아 실로 만든다. 이 실을 통 모양으로 한 번 짠 뒤 지하수에 빨아 부드럽게 하고, 자연 바람에 말린다. 겨울에는 마르는 데 열흘쯤 걸린다. 그리고 다시 손으로 풀어 실로 감는다. 이렇게 만든 와시를 캐시미어나 알파카에 섞으면, 니트가 잘 늘어나지 않고 형태가 입체적으로 잡힌다고 한다.

4. 한국의 한지사
우리나라에도 종이실이 있다. 한지로 만든 실, '한지사'다.
한지사도 원리는 같다. 닥나무 껍질로 만든 얇은 한지를 3mm 안팎의 폭으로 길게 자른 뒤 꼬아서 실을 만든다. 한국니트산업연구원이 한지사를 처음 개발했고, 2000년대 중후반부터 관련 특허가 여럿 나왔다.
한지사는 한지의 성질을 그대로 가져온다. 바람이 잘 통하고, 땀을 잘 흡수하고 빨리 마르며, 냄새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2016년에는 빈폴이 폴리에스터, 레이온과 한지사를 섞은 셔츠를 내놓기도 했다. 2018년 한 연구에서는 한지사로 짠 데님이 일반 데님보다 가볍고, 실 표면에 잔털이 거의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여름 청바지 소재로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한지사는 혼자 쓰기보다 면이나 폴리에스터 같은 다른 실과 섞어, 양말이나 여름 셔츠처럼 피부에 닿는 옷에 쓰이는 경우가 많다. 지금 쉽게 살 수 있는 국산 한지 양말 중에는 한지가 40% 넘게 들어간 제품도 있다.
5. 와시와 한지, 무엇이 비슷하고 다를까
| 구분 | 일본 와시 실 | 한국 한지사 |
|---|---|---|
| 원료 | 닥나무, 삼지닥나무 등 | 닥나무 |
| 역사 | 가미코·시후로 천 년 넘는 종이옷 역사 | 2000년대에 실로 본격 개발 |
| 강점 | 장인 공예, 고급 니트·소품 | 기능성 소재 연구, 일상복 |
| 대표 제품 | 와시 니트, 스톨, 가방, 양말 | 양말, 여름 셔츠, 데님 연구 |
둘 다 '종이'라는 같은 재료에서 출발했지만, 일본은 오래된 공예를 이어 가는 쪽으로, 한국은 기능성 소재로 키워 가는 쪽으로 발전해 온 셈이다.

6. 디자이너의 시선
종이실을 처음 만져 보면 생각보다 단단하고 바삭하다. 울처럼 포근하지도, 면처럼 부드럽지도 않다. 그래서 니트로 짜면 몸에 흐르기보다 형태를 만든다.
종이옷을 디자인한다면 나는 한여름을 먼저 떠올릴 것 같다. 종이실은 바람이 잘 통하고, 땀을 빨아들인 뒤 금방 마른다. 덥고 끈적한 우리나라의 여름에, 몸에 달라붙지 않는 보송한 옷을 만들기에 이만한 소재가 드물다. 가볍고 구김이 덜 가서, 에어컨 바람이 서늘한 사무실에서 가방에서 꺼내 두르는 스톨로도 좋다. 다만 젖은 채로 문지르면 약해지니, 비를 흠뻑 맞는 장마철 외출복이나 땀을 많이 흘리는 운동복보다는 일상복과 소품에 더 어울린다.
친환경이라는 말도 종이옷에는 꽤 잘 어울린다. 닥나무는 베어 내도 다시 자라고, 종이 섬유는 땅으로 돌아간다. 무엇보다 종이옷은 처음부터 헌 종이를 버리지 않고 실로 만들어 입던 옷이었다.
물론 지금의 종이실 제품은 대부분 합성섬유와 섞여 있어서, 종이가 들어갔다고 모두 친환경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석유로 만든 실을 조금 덜 쓰고, 다시 자라는 식물을 조금 더 쓰는 것. 디자이너로서 나는 그 작은 차이가 옷이 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종이 한 장이 실이 되고, 실이 옷이 된다. 다음 글에서는 지금 살 수 있는 일본과 한국의 종이실 제품들을 하나씩 소개해 보려고 한다.

출처
- Selvedge, The 'Three Whites' of Shiroishi: https://selvedge.org/blogs/journal/the-three-whites-of-shiroishi
- ATON, VOL.12 WASHI: https://aton-tokyo.com/en/blogs/journal/vol-12-wool-washi
- blueknit (marusawa), 와시 실 스톨: https://blueknit.jp/products/saw23-0001
- 마켓컬리, 비아리츠 한지 섬유 양말: https://www.kurly.com/goods/1000218166
- Samsung C&T Newsroom, Beanpole hanji shirts (2016): https://news.samsungcnt.com/en/?p=1038
- Park & Kim, Fashion and Textiles (2018), Hanji paper yarn denim: https://fashionandtextiles.springeropen.com/articles/10.1186/s40691-018-0140-6
- 전북일보, 한지섬유 관련 기고 (2012): https://www.jjan.kr/article/20120919447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