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박람회에 다녀왔다. 여러 부스를 돌다가 캐시미어 업체들이 모인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눈에 띈 건 몽골에서 온 업체가 정말 많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놀란 점이 있었다. 부스를 지키던 몽골 사람들이 한국말을 아주 잘했다. 캐시미어의 촉감을 설명하는 말투가 자연스러워서, 한참을 서서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글에서 캐시미어는 양털이 아니라 염소의 속털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오늘은 한 걸음 더 들어가, 캐시미어의 나라 몽골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몽골의 초원에서 우리 옷장까지, 캐시미어는 어떤 길을 걸어올까.
1. 몽골은 왜 캐시미어의 나라가 되었을까
캐시미어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는 중국이고, 그다음이 몽골이다. 2016년 기준으로 중국이 약 1만 9,200톤, 몽골이 약 8,900톤의 원모를 생산했다. 자료에 따라 몽골은 세계 원모 캐시미어의 3분의 1에서 40% 정도를 차지한다고 본다.
몽골이 캐시미어의 나라가 된 데에는 날씨가 큰 역할을 했다. 캐시미어 염소는 추운 고원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거친 겉털 아래에 아주 가늘고 부드러운 속털을 기른다. 겨울이 길고 혹독한 몽골은 이런 염소가 살기에 맞는 곳이었다.
몽골에는 등록된 캐시미어 염소 품종이 11종이나 있다. 2024년 연구에 따르면 몽골 지역별 캐시미어의 평균 굵기는 15.6-17.9마이크론이었다. 국제적인 캐시미어 기준인 19마이크론보다 가늘다.
2. 염소 한 마리에서 1년에 150g
캐시미어가 비싼 이유는 숫자로 보면 바로 이해가 된다.
염소 한 마리에서 1년에 얻는 캐시미어는 평균 약 150g이다. 그것도 바로 쓸 수 있는 양이 아니다. 봄 털갈이 시기에 빗으로 빗어 모은 털에는 거친 겉털과 먼지, 기름기가 섞여 있다. 이것을 씻고, 기계로 거친 털을 골라내는 '디헤어링'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부드러운 캐시미어 섬유가 남는다.
빗질로 모으는 방식은 털을 깎는 방식보다 순수한 속털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몽골에서 오래 이어진 방식이다.
결국 스웨터 한 벌에는 여러 마리 염소의 1년이 담겨 있는 셈이다.

3. 원모를 파는 나라에서 브랜드를 만드는 나라로
그런데 몽골의 캐시미어 산업에는 오래된 고민이 있다.
몽골에서 나온 캐시미어의 약 80-85%는 반쯤 가공된 원료 상태로 해외에 수출된다. 몽골 안에서 실이 되고 옷이 되는 것은 15-20% 정도뿐이다. 좋은 원료를 가지고도, 값이 가장 많이 붙는 실과 옷을 만드는 단계는 다른 나라에서 이루어져 온 것이다.
그래서 몽골은 직접 가공하고 직접 브랜드를 만드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 그 대표가 몽골 최대의 캐시미어 회사 '고비(GOBI)'다.
고비의 시작에는 일본이 있다. 1977년 일본은 몽골과 협정을 맺고 50억 엔을 지원해 캐시미어 공장을 짓기로 했다. 몽골 기술자 78명이 일본에서 가공 기술을 배웠고, 1981년 울란바토르에 공장이 문을 열었다. 이후 1993년 주식회사가 되었고, 2007년 완전히 민영화되었다.
지금 고비는 원료부터 완제품까지 직접 만드는 회사로, 한 해 약 1,200톤의 원모를 가공할 수 있다. 몽골뿐 아니라 독일 등 해외에도 매장을 두고 있다.
몽골 정부도 자국 안에서 가공하는 비율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박람회에서 만난 몽골 업체들이 원료가 아니라 완성된 니트와 숄을 들고 나온 것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4. 한국과 몽골, 캐시미어로 이어지다
박람회장에서 몽골 사람들이 한국말을 잘하는 걸 보며, 두 나라가 생각보다 가깝다는 걸 느꼈다.
실제로 두 나라의 교류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2026년 7월, 킨텍스와 몽골 최대 경제단체인 몽골상공회의소는 몽골에 새 전시·컨벤션센터를 짓고 운영하는 데 협력하기로 업무협약을 맺었다. 전시회를 함께 홍보하고 기업 간 교류를 넓히는 것도 협약에 담겼다.
몽골의 캐시미어가 한국의 박람회장에 오고, 한국의 전시 운영 경험이 몽골로 가는 셈이다.
5. 캐시미어가 초원을 아프게 할 때
하지만 캐시미어 이야기에는 그늘도 있다.
캐시미어가 돈이 되자 몽골의 염소는 빠르게 늘었다. 1990년 약 510만 마리였던 염소는 2021년 약 2,640만 마리로, 30년 만에 5배가 넘게 늘었다. 원래 몽골 유목민은 양 3마리에 염소 1마리 정도의 비율로 가축을 길렀지만, 지금은 거의 1대 1에 가깝다.
문제는 초원이다. 유엔개발계획(UNDP)에 따르면 몽골 초원의 약 70%가 어느 정도 황폐해졌다. 가축이 너무 많아지면 풀이 다시 자랄 틈이 없어진다. 특히 염소는 풀을 아주 짧게 뜯어 먹기 때문에, 염소가 많아질수록 초원이 회복하기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여기에 혹독한 날씨가 겹친다. 몽골에는 '조드(dzud)'라고 부르는 혹독한 겨울 재해가 있다. 폭설과 극심한 추위로 가축이 풀을 찾지 못해 굶어 죽는 것이다. 2023-24년 겨울에는 2024년 3월까지 약 520만 마리의 가축이 죽었다. 몽골 전체 가축의 약 8%였다.
몽골 인구의 약 30%가 유목에 기대어 살아간다. 캐시미어는 이들의 생계이면서, 동시에 이들의 땅을 지키는 문제이기도 하다.

6. 지속 가능한 캐시미어를 위한 움직임
다행히 이 문제를 바꾸려는 움직임도 있다.
유엔개발계획은 브랜드와 가공 업체, 유목민, 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지속 가능한 캐시미어 플랫폼'을 만들었다. 고비는 지속가능섬유연합(SFA)의 프로젝트에 참여해 목초지 관리와 동물 복지, 품질 개선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핵심은 두 가지다. 초원이 견딜 수 있는 만큼만 가축을 기르는 것, 그리고 캐시미어가 어느 목장의 어떤 염소에게서 왔는지 추적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초원을 지키며 기른 캐시미어가 제값을 받을 수 있다.
소비자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 혼용률 확인하기: 캐시미어 100%인지, 다른 섬유가 섞였는지 라벨을 본다.
- 원산지와 인증 보기: 원산지와 지속 가능성 인증 여부를 확인한다.
- 너무 싼 캐시미어 의심하기: 염소 한 마리에서 1년에 150g이라는 숫자를 떠올리면, 지나치게 싼 가격에는 이유가 있다.
- 오래 입기: 좋은 캐시미어 한 벌을 오래 입는 것이 초원에도 가장 좋은 선택이다.
7. 디자이너의 시선
박람회에서 몽골 캐시미어를 만져 보며 다시 느꼈다. 캐시미어는 정말 다른 소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드럽고 가볍다.
그런데 그 부드러움 뒤에는 혹독한 겨울을 견딘 염소와, 봄마다 털을 빗어 모으는 유목민의 손과, 점점 메말라 가는 초원이 있다. 옷 한 벌의 가격표에는 다 보이지 않는 이야기다.
디자이너로서 캐시미어를 쓸 때 앞으로는 촉감과 색만이 아니라 그 원료가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도 함께 묻고 싶다. 몽골이 원료를 파는 나라에서 브랜드를 만드는 나라로 바뀌어 가는 것처럼, 우리도 캐시미어를 많이 사는 사람에서 잘 고르는 사람으로 바뀌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올겨울 캐시미어 니트를 꺼내 입을 때, 그 안에 담긴 몽골 초원의 1년을 한 번쯤 떠올려 보면 좋겠다.

출처
- Wikipedia, Cashmere wool: https://en.wikipedia.org/wiki/Cashmere_wool
- Wikipedia, Gobi Cashmere: https://en.wikipedia.org/wiki/Gobi_Cashmere
- Frontiers in Genetics, Genetic characterization of cashmere goat populations in Mongolia (2024): https://www.frontiersin.org/journals/genetics/articles/10.3389/fgene.2024.1421529/full
- UNDP, How sustainable cashmere is reversing land degradation in Mongolia (2021): https://www.undp.org/blog/how-sustainable-cashmere-reversing-land-degradation-mongolia
- Save the Children, Mongolia's extreme winter (2024): https://www.savethechildren.net/news/mongolias-extreme-winter-52-million-livestock-dead-children-miss-out-school
- 한국경제, 킨텍스-몽골상공회의소 업무협약 (2026):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713235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