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전 편직기에서 오늘날 입체 니트까지
우리는 흔히 니트라고 하면 스웨터나 카디건을 떠올린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몸에 맞게 잘 늘어나는 옷.
그런데 니트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꽤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니트는 단순히 실을 엮어 만든 원단이 아니다. 실을 짜는 과정에서 형태를 만들고, 두께를 조절하고, 필요한 부분에 기능까지 넣을 수 있는 기술이다.
수많은 소재를 만났지만, 니트는 알면 알수록 신기한 소재다.
보통은 원단을 먼저 만들고, 자르고, 봉제해서 제품을 완성한다. 하지만 니트는 처음부터 완성될 형태를 생각하며 짤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기술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1. 400년 전, 사람이 하던 뜨개질을 기계가 시작했다
니트 기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589년 영국으로 향한다.
윌리엄 리라는 발명가는 사람이 손으로 하나씩 만들던 뜨개 코를 기계로 만들어내는 편직기를 개발했다.
당시에는 스웨터보다 스타킹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목적이었다.
지금처럼 컴퓨터가 달린 기계도 아니었고, 사람이 직접 움직이는 커다란 장치였다. 하지만 여러 개의 바늘을 이용해 실을 엮는다는 기본적인 원리는 오늘날의 편직 기술로 이어졌다.
우리가 매일 입는 니트가 사실은 400년이 넘는 기계 기술의 발전 위에 만들어진 셈이다.
2. 원단은 자르지만, 니트는 짜면서 형태를 만든다
일반적인 옷은 원단 위에 패턴을 놓고 재단한다.
앞판과 뒤판, 소매를 따로 잘라 봉제하면서 하나의 옷을 완성한다.
그런데 니트는 편직 과정에서 코의 수를 늘리거나 줄여 원하는 형태에 가깝게 만들 수 있다.
이런 방식을 풀리 패션드(Fully Fashioned)라고 한다.
더 발전한 기술은 옷 한 벌을 통째로 짜기도 한다.
1995년 일본의 시마세이키는 봉제를 최소화하거나 없애는 입체 편직 기술인 홀가먼트(WHOLEGARMENT)를 선보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 기술의 아이디어가 장갑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장갑의 손가락 부분을 몸판과 소매로 바꾸면 스웨터도 통째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작은 장갑을 커다란 옷의 구조로 바라본 상상이 새로운 편직 기술로 이어진 것이다.
물론 모든 니트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니트도 재단하고 봉제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을 짜는 과정에서 제품의 형태까지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특별한 능력이다.
3. 한 장의 니트에 여러 가지 기능을 넣는다
운동화를 떠올려 보자.
발등은 부드러워야 하고, 발 옆면은 잘 잡아줘야 한다. 발가락 주변은 움직이기 편해야 하고, 열이 많이 나는 곳은 통풍이 잘되어야 한다.
이런 기능을 만들기 위해 여러 소재를 이어 붙이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니트는 한 장 안에서 조직을 바꾸는 것만으로 서로 다른 성질을 만들 수 있다.
어떤 부분은 촘촘하게, 어떤 부분은 성글게, 또 어떤 부분은 잘 늘어나지 않도록 짠다.
나이키의 플라이니트(Flyknit)가 좋은 예다.
발을 지지해야 하는 부분과 유연해야 하는 부분을 다르게 설계해 편직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의 니트 원단이지만, 그 안에는 서로 다른 기능이 들어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니트의 무늬는 단순히 예쁘게 보이기 위한 장식이 아니다.
조직 자체가 기능이 되는 셈이다.
4. 실로 두께와 볼륨까지 만든다
니트는 표면의 질감도 짜면서 조절할 수 있다.
리브 조직은 세로 방향으로 골을 만들어 잘 늘어나고 다시 돌아오는 성질을 만든다. 와플 조직은 표면에 작은 요철을 만들고, 이중 조직을 이용하면 두께와 볼륨을 더할 수도 있다.
일반 원단도 퀼팅이나 본딩, 플리츠 가공으로 입체감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니트는 별도의 가공 없이 편직 조직 자체로 비슷한 효과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게이지(Gauge)다.
게이지는 일반적으로 편직기의 일정한 폭에 배열된 바늘의 수를 나타낸다.
같은 실을 사용하더라도 게이지와 조직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표면이 나온다.
굵고 성근 조직은 풍성한 느낌을 주고, 가는 실을 촘촘하게 짜면 정교하고 매끈한 표면을 만들 수 있다.
다만 게이지가 높다고 무조건 더 단단한 것은 아니다. 실의 굵기와 종류, 조직, 편직 장력까지 함께 작용한다.
그래서 니트디자인은 단순히 겉모습을 그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실과 조직을 어떻게 조합해야 원하는 형태가 나올지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조직이 곧 실루엣이 되는 니트.*
5. 스웨터를 넘어 신발과 가방이 되다
니트의 발전이 재미있는 이유는 옷을 넘어 다른 제품에도 활용된다는 점이다.
운동화는 발의 형태에 맞춰 편직할 수 있고, 가방은 손잡이와 몸판을 연결해서 짤 수도 있다.
부분적으로 촘촘한 조직을 사용해 안정감을 높이고, 몸판은 부드럽게 흐르도록 설계할 수도 있다.
주머니 역시 별도의 원단을 붙이는 대신 편직 구조 안에서 만들어내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니트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가방이라면 물건의 무게를 견뎌야 하고, 손잡이가 지나치게 늘어나지 않아야 한다. 형태를 유지하는 힘도 중요하다.
하지만 봉제하거나 부자재를 추가하기 전에 편직 조직만으로 해결할 방법이 있는지 고민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형태를 먼저 만들고 기능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기능을 생각하면서 형태를 짜는 것이다.

*실로 짠 한 장이 등받이가 되고 앉는 면이 될 때.*
6. 이런 기술을 연구해 온 회사들
니트 기술의 발전에는 패션 브랜드뿐 아니라 오랫동안 편직기를 연구해 온 회사들이 있다.
1873년 독일에서 시작된 STOLL은 평편직 기술과 다양한 니트 조직을 발전시켜 온 대표적인 기업이다. 니트의 무늬와 구조를 기계로 구현하는 기술을 연구해 왔다. 이후 칼 마이어 그룹에 합쳐졌고, 2025년 독일 공장에서의 편직기 생산을 마무리했다.
1937년에 설립된 독일 KARL MAYER는 경편 기술을 중심으로 기능성 소재와 입체적인 편직물 분야를 발전시켰다.
1962년 설립된 일본 SHIMA SEIKI는 장갑 편직기에서 출발해 1995년 홀가먼트 기술을 선보이며 봉제 없는 입체 니트의 가능성을 넓혔다.
오늘날 니트의 다양한 조직과 입체적인 형태는 이런 오랜 기계 기술의 발전이 있었기에 가능해졌다.
7. 버려지는 원단까지 줄일 수 있을까?
일반적인 의류는 원단을 재단하면서 자투리가 생긴다.
특히 곡선이 많거나 패턴이 복잡할수록 남는 부분이 생기기 쉽다.
니트는 필요한 모양에 맞춰 짜는 기술을 활용하면 재단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줄일 수 있다.
풀리 패션드나 홀가먼트가 대표적인 예다.
그렇다고 니트가 무조건 친환경적인 것은 아니다. 실을 만드는 과정, 염색, 편직 에너지, 제품의 수명까지 모두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필요한 형태만큼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 중요한 장점이다.
8. 니트의 미래는 실이 아니라 구조에 있다
예전에는 니트를 따뜻한 옷을 만드는 기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운동화와 가방뿐 아니라 의료용 압박 제품, 기능성 섬유, 산업용 소재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니트의 기술이 발전할수록 디자인의 출발점도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예쁜 형태를 먼저 그리고 어떤 소재로 만들지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기능이 필요한지 생각하고 그 기능을 어떤 조직으로 구현할지 고민하는 것이다.
원단과 니트 중 어느 것이 더 뛰어나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각각 잘하는 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니트에는 다른 소재가 쉽게 흉내 내기 어려운 방식이 있다.
실 한 가닥이 표면이 되고, 형태가 되고, 때로는 제품의 구조까지 된다는 것.
나는 이 지점이 니트의 가장 재미있는 가능성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앞으로 만나게 될 니트는 단순히 부드럽고 따뜻한 옷이 아니라, 기능과 형태가 함께 설계된 새로운 제품일지도 모르겠다.
출처
- Nottinghamshire HER, Inventions from Nottingham: The Stocking Frame: https://her.nottinghamshire.gov.uk/whats-new/inventions-from-nottingham-the-stocking-frame
- Knitting Industry, WHOLEGARMENT: The philosophy and technology of a fashion revolution: https://knittingindustry.com/opinion/wholegarment-the-philosophy-and-technology-of-a-fashion-revolution-by-masahiro-shima/
- Knitting Industry, Nike Flyknit, a seamlessly knitted running shoe: https://www.knittingindustry.com/nike-flyknit-a-seamlessly-knitted-running-shoe/
- Knitting Industry, Cixing Group acquires Stoll assets from Karl Mayer: https://knittingindustry.com/cixing-group-acquires-stoll-assets-from-karl-m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