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에 놓인 신발을 한번 세어 본다.
운동화, 구두, 슬리퍼, 장화. 계절마다 신는 신발도 다르고, 같은 운동화라도 걷기 좋은 신발과 달리기 좋은 신발이 따로 있다.
매일 신으면서도 신발이 언제부터 지금 같은 모양이었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다.
지난 글에서 페트병이 운동화의 실이 되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번에는 신발 자체가 궁금해졌다.
사람은 언제부터 신발을 신었을까? 처음부터 왼발과 오른발이 따로 있었을까? 그리고 지금의 운동화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오늘은 약 1만 년 전의 샌들에서 시작해 할머니의 고무신을 지나, 지금 우리가 신고 있는 운동화까지 신발의 역사를 따라가 보려고 한다.
1. 1만 년 전, 나무껍질로 신발을 짜다
지금까지 발견된 신발 중 연대를 직접 측정해 확인한 가장 오래된 사례는 미국 오리건주의 포트록 샌들이다.
1938년, 고고학자 루서 크레스먼이 포트록 동굴에서 샌들과 그 조각 수십 점을 발견했다. 화산재 아래 묻혀 있던 신발이었다.
이 지역에서 발견된 같은 유형의 샌들은 약 9,100~1만 400년 전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재료는 놀랍게도 산쑥의 껍질이다.
껍질에서 얻은 섬유를 길게 찢어 꼬고, 그 섬유를 서로 엮어 밑창을 만들었다. 발가락 위를 덮는 부분도 있었고, 뒤꿈치 쪽에는 발에 고정하기 위한 끈과 고리가 있었다.
지금의 샌들과 비교해도 기본적인 구조가 크게 낯설지 않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이 있다.
가장 오래된 신발 중 하나가 가죽을 잘라 만든 것이 아니라, 식물 섬유를 꼬아 짠 물건이라는 사실이다.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꽤 흥미롭다. 물론 니트처럼 편직한 것은 아니지만, 가느다란 섬유를 서로 얽어 하나의 형태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우리가 지금 운동화의 윗부분을 실로 짜는 것처럼, 아주 오래전 사람들도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섬유로 신발을 만들고 있었던 셈이다.
2. 5,500년 전, 가죽 한 장으로 발을 감싸다
2008년, 아르메니아의 아레니-1 동굴에서는 약 5,500년 된 가죽신이 발견되었다.
이 신발은 소가죽 한 장을 발 모양으로 감싸고, 앞과 뒤의 이음새를 가죽 끈으로 꿰어 여민 형태다.
놀랍게도 끈까지 남아 있었다.
신발 안에는 풀이 채워져 있었는데, 보온을 위한 것인지, 신발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면 작은 성인용 신발 정도의 크기다. 누가 신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생각보다 낯설지 않은 모양이다. 요즘의 가죽 모카신이나 부드러운 실내화와도 조금 닮아 있다.
비슷한 시기의 또 다른 신발도 있다.
무스탕과 어그부츠의 역사에서 소개했던 알프스의 아이스맨, 외치도 신발을 신고 있었다.
약 5,300년 전의 외치가 신었던 신발은 생각보다 구조가 복잡했다.
밑창에는 곰가죽, 윗부분에는 사슴가죽을 사용했고, 안쪽에는 피나무 껍질 섬유로 만든 그물 구조가 들어 있었다. 그 사이에 마른 풀을 채워 발을 따뜻하게 보호했다.
지금 운동화의 안감이나 보온재처럼, 서로 다른 재료를 역할에 맞게 사용한 것이다.
5,000년도 더 전에 이미 사람들은 신발을 단순히 발에 감싸는 물건이 아니라, 환경에 맞춰 기능을 갖춰야 하는 도구로 생각했던 것 같다.
3. 왼발과 오른발이 똑같았던 신발
지금 신발을 신을 때 왼발과 오른발을 구분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과거 유럽에서는 좌우 모양이 똑같은 신발을 만드는 방식이 널리 사용되었다.
신발을 만들 때는 발 모양의 틀인 ’라스트(Last)’를 사용한다. 오늘날에는 왼발과 오른발의 형태가 다르지만, 당시에는 좌우가 대칭인 곧은 틀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런 신발을 ’스트레이트 슈즈(Straight Shoes)’라고 불렀다.
물론 역사상 모든 신발이 좌우 구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발 모양을 고려한 신발도 존재했다.
흥미로운 건 19세기 중반까지도 좌우 대칭형 신발이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1854~1860년에 제작된 좌우 대칭형 여성용 신발이 남아 있다.
요즘은 신발의 발볼이나 아치 높이까지 세밀하게 설계한다. 그런데 불과 몇 세대 전만 해도 양쪽이 똑같은 신발을 신고 다녔다니 조금 신기하다.
4. 50cm 높이의 신발, 쇼핀
신발이 언제나 편안함을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16~17세기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는 아주 높은 신발이 유행했다. 이름은 ’쇼핀(Chopine)’이다.
나무나 코르크로 만든 높은 받침 위에 가죽이나 벨벳을 씌운 신발로, 일부는 높이가 50cm를 넘기도 했다.
처음에는 진흙과 오물로부터 발과 긴 옷자락을 보호하는 실용적인 역할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쇼핀은 부와 지위를 드러내는 물건이 되었다.
신발이 높아질수록 그 위에 입는 치마도 길어져야 했다. 그만큼 더 많은 옷감이 필요했고, 값비싼 소재를 사용할수록 부를 과시할 수 있었다.
높은 쇼핀은 걷기에도 불편했다. 특히 높이가 과도한 신발을 신을 때는 시중드는 사람의 부축을 받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신발이 가볍고 편해야 좋은 제품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불편한 신발 자체가 특별한 지위를 보여 주기도 했던 것이다.
신발의 기능보다 사회적인 의미가 더 중요해진 순간이다.

5. 고무가 등장하면서 신발이 달라졌다
지금의 운동화가 탄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소재는 고무다.
고무는 탄력이 있고 물을 막아 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천연고무를 그대로 사용하면 온도에 따라 성질이 크게 달라진다.
더운 날에는 끈적거리고, 추운 날에는 딱딱해지기 쉽다.
이 문제를 해결한 중요한 기술이 ’가황(Vulcanization)’이다.
1839년 미국의 찰스 굿이어는 고무와 황을 열로 처리해 성질을 개선하는 방법을 발견했다. 이후 1844년 미국에서 관련 특허를 받았다.
이 기술 덕분에 고무는 이전보다 안정적이고 탄력 있는 소재로 활용될 수 있었다.
신발에도 변화가 생겼다.
가죽만으로 바닥을 만들던 방식에서 벗어나, 고무로 밑창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윗부분은 가볍고 유연한 캔버스로, 바닥은 마찰력이 좋은 고무로 만들었다.
소재마다 잘하는 일을 나누어 맡긴 셈이다.
생각해 보면 지금의 운동화도 마찬가지다. 발등은 부드럽게 감싸고, 바닥은 충격을 흡수하고, 땅에 닿는 부분은 쉽게 미끄러지지 않도록 만든다.
하나의 재료로 모든 기능을 해결하기보다 서로 다른 재료를 조합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온 것이다.
6. 살금살금 걷는 신발, 스니커즈
운동화를 영어로 ’스니커즈(Sneakers)’라고 부르는 이유도 재미있다.
가죽 밑창이나 단단한 굽이 달린 신발은 걸을 때 발소리가 났다.
그런데 고무 밑창을 사용한 신발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그래서 ‘살금살금 움직이다’라는 뜻의 영어 ’스니크(Sneak)’와 연결된 이름이 붙었다.
스니커즈라는 말은 19세기 후반부터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7년에 처음 만들어진 이름은 아니다.
그 무렵 운동화는 본격적으로 스포츠와 만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신발이 컨버스의 올스타다.
컨버스는 1917년 농구용 신발인 ’논스키드(Non-Skid)’를 선보였고, 1919년에는 올스타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1922년에는 농구 선수 척 테일러가 판매원으로 합류했다. 이후 그의 이름과 서명이 신발에 더해지면서 지금 우리가 아는 척 테일러 올스타의 역사가 이어졌다.
처음에는 운동을 위한 신발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일상복에도 신는 패션 아이템이 되었다.
운동화가 운동장 밖으로 나온 것이다.

7. 짚신에서 고무신으로, 우리나라 신발 이야기
우리나라에도 소재가 신발을 바꾼 시기가 있었다.
바로 짚신에서 고무신으로 넘어가던 때다.
옛날에는 볏짚을 꼬아 만든 짚신을 일상적으로 신었다. 짚은 농사를 짓고 남은 재료로 구하기 쉬웠고, 직접 엮어 신발을 만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물에 젖기 쉽고 오래 신으면 닳아 버렸다.
1922년, 대륙고무공업회사는 ‘대장군표’ 고무신을 생산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당시 광고에는 순종이 고무신을 사용했다는 내용까지 등장했다. 왕실과의 관계를 강조한 마케팅이었던 셈이다.
고무신이 인기를 얻은 이유는 단순했다.
짚신보다 질겼고, 물에 강했고, 더러워지면 씻어 신을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볼 점이 있다.
새로운 소재를 사용했지만 신발의 모양은 낯설지 않았다는 것이다.
남성용 고무신은 앞코가 넓은 짚신의 형태를, 여성용은 앞코가 좁고 올라간 전통 신발의 형태를 닮았다.
소재는 새로워졌지만 사람들이 익숙하게 느끼는 모양을 유지한 것이다.
1932년에는 경성고무공업회사가 설립되었고, ‘만월표’ 고무신이 등장했다. 업체들은 신문 광고를 통해 치열하게 경쟁했다.
고무신은 오랫동안 우리 생활 속 대표적인 신발로 자리 잡았다. 이후 운동화와 구두가 보편화되면서 일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줄어들었다.
하지만 고무신은 지금도 우리말 속에 남아 있다.
‘고무신을 거꾸로 신다’라는 표현이다.
신발 하나가 생활용품을 넘어 사람들의 기억과 언어 속에 남은 것이다.
8. 가죽 한 장에서 여러 겹의 운동화로
5,500년 전의 가죽신과 지금의 운동화를 나란히 놓으면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이 있다.
바로 신발을 구성하는 소재와 구조다.
옛날의 가죽신은 가죽 한 장을 중심으로 발을 감싸는 방식이었다.
반면 지금의 운동화는 여러 재료를 기능에 맞게 조합한다.
| 구분 | 고대 아레니 가죽신 | 현대 운동화 |
|---|---|---|
| 윗부분 | 가죽 한 장 | 니트, 메쉬, 가죽, 합성섬유 |
| 내부 | 풀 충전 | 안감, 인솔, 보강재 |
| 쿠션 | 별도 중창 없음 | EVA, PU 등 폼 중창 |
| 밑창 | 가죽 | 고무, 합성 소재 |
| 고정 방식 | 가죽 끈 | 신발 끈, 벨크로 등 |
| 조립 방식 | 가죽을 여며 연결 | 봉제, 접착, 열접합 등 |

요즘 운동화는 겉에서 보기에는 단순해 보여도 내부에는 여러 기술이 들어 있다.
특히 최근에는 운동화의 윗부분을 실로 직접 짜는 니트 어퍼(Knit Upper)가 널리 사용된다.
필요한 부분은 촘촘하게 짜고, 통기성이 필요한 부분은 성글게 짠다. 같은 신발 안에서도 편직 밀도와 조직을 달리해 기능을 조절할 수 있다.
패션디자이너 입장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다.
예전에는 신발의 형태를 만들기 위해 여러 원단을 재단하고 이어 붙였다면, 이제는 편직 단계에서 형태와 기능을 함께 설계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발전한 신발에도 고민거리가 있다.
바로 신발을 다 신고 난 다음이다.
서로 다른 소재를 접착하고 결합해 만든 운동화는 분리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폼 중창과 고무 밑창, 합성섬유로 만든 윗부분은 각각 재활용 방법도 다르다.
더 가볍고 편한 신발을 만들기 위해 발전한 기술이, 폐기 단계에서는 새로운 어려움을 만들기도 한다.
친환경 니트와 재활용 소재에 관한 지난 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좋은 소재를 사용하는 것만큼, 제품을 다 사용한 뒤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도 중요한 디자인의 문제가 되었다.
9. 디자이너의 시선, 소재가 신발을 바꿨다
신발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니 재미있는 공통점이 보였다.
사람들은 언제나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신발을 만들었다.
식물 섬유가 있는 곳에서는 섬유를 꼬아 샌들을 만들었고, 가죽을 구할 수 있는 곳에서는 발을 감싸는 신발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볏짚으로 짚신을 엮었다.
그리고 고무를 가공하는 기술이 발전하자 신발의 바닥이 달라졌고, 실을 입체적으로 짜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운동화의 윗부분도 달라졌다.
그런데 소재만큼 흥미로운 것이 사람들의 마음이다.
베네치아의 쇼핀은 불편해도 신분을 드러낼 수 있었기에 특별한 신발이 되었고, 우리나라의 고무신은 새로운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익숙한 전통 신발의 형태를 유지했다.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을 원하면서도 익숙한 모양을 쉽게 버리지 않는다.
15년 동안 패션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새로운 소재를 만날 때마다 비슷한 생각을 했다.
소재가 달라지면 만들 수 있는 형태가 달라지고, 형태가 달라지면 사용하는 방법도 달라진다.
하지만 아무리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더라도 결국 사람이 편하게 받아들이고 오래 사용할 수 있어야 좋은 디자인이 된다.
지금 우리가 신고 있는 운동화도 언젠가는 쇼핀이나 고무신처럼 오래된 시대의 신발이 될 것이다.
그때의 사람들은 우리의 운동화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수십 가지 소재를 붙여 만든 복잡한 신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플라스틱으로 신발을 만들던 시대가 있었다며 신기해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미래의 신발은 한 가지 소재만으로 만들어져 쉽게 재활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현관에 놓인 운동화를 다시 한번 바라본다.
1만 년 전 사람들이 나무껍질을 엮어 신발을 만들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 시대에 가장 익숙한 재료로 신발을 만들고 있다.
신발은 발을 보호하는 물건이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그 시대의 기술과 생활이 담겨 있다.
출처
- Oregon Encyclopedia, Fort Rock Sandals: https://oregonencyclopedia.org/articles/fort_rock_sandals
- National Geographic, World's Oldest Leather Shoe Found in Armenia (2010):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culture/article/100609-worlds-oldest-leather-shoe-armenia-science
- South Tyrol Museum of Archaeology, Iceman's shoe and coat: https://www.iceman.it/en/icemanshoeandcoat/
- EXARC Journal, Reconstructing Ötzi's Shoes: https://exarc.net/ark:/88735/10692
-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Shoes (1854–60): https://www.metmuseum.org/art/collection/search/118056
- FIT Fashion History, Chopines: https://fashionhistory.fitnyc.edu/chopines/
- Victoria and Albert Museum, Pair of chopines: https://collections.vam.ac.uk/item/O74599/pair-of-chopines-unknown/
- Wikipedia, Charles Goodyear: https://en.wikipedia.org/wiki/Charles_Goodyear
- Wikipedia, Sneakers: https://en.wikipedia.org/wiki/Sneakers
- Nike, The True History of the Converse Chuck Taylor All Star: https://about.nike.com/en/stories/converse-chuck-taylor-all-star-iconic-sneaker-true-history
- 서울신문, [민속의 창] 고무신 환생기 (2007): https://m.seoul.co.kr/news/2007/01/20/2007012040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