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면 옷장에서 꺼내는 두 가지가 있다. 무스탕과 어그부츠.
둘 다 털이 붙은 양가죽, ’시어링(Shearling)’으로 만든다는 이야기를 지난 글에서 잠깐 했다.
무스탕은 두툼한 털 칼라가 멋스럽고, 어그부츠는 겨울이면 유행을 타고 다시 등장한다. 이제는 패션 아이템으로 너무 익숙한 두 가지.
그런데 이 옷들은 처음부터 멋을 내려고 만들어졌을까?
역사를 찾아보니 조금 다른 이야기가 있었다. 누군가는 눈 덮인 산을 걷기 위해, 누군가는 하늘 위의 추위를 견디기 위해, 또 누군가는 차가운 바다에서 나온 발을 따뜻하게 하려고 양가죽을 사용했다.
오늘은 그 투박한 옷들이 어떻게 지금의 패션이 되었는지 따라가 보려고 한다.
1. 5,300년 전, 얼음 인간이 입었던 가죽 코트
1991년 알프스의 빙하에서 약 5,300년 전 살았던 사람이 발견되었다.
이름은 외치(Ötzi). 얼음 속에 오랫동안 보존되어 ‘아이스맨’이라고도 불리는 사람이다.
놀라운 건 그의 옷까지 함께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
외치가 입었던 코트는 양과 염소의 가죽을 여러 조각 이어 만든 옷이었다. 밝고 어두운 가죽을 길게 재단해 동물의 힘줄로 꿰맸고, 털이 바깥으로 향하도록 입었다.
단추나 지퍼는 없었다. 허리띠로 여며 입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재미있는 건 오래 입었던 흔적도 남아 있다는 점이다. 해진 봉제선을 풀잎 섬유로 수선한 부분까지 발견되었다.
처음에는 원시적인 옷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렇지만도 않았다.
여러 소재를 이어 붙이고, 몸을 감싸도록 형태를 만들고, 망가지면 다시 고쳐 입었다.
지금과 도구만 달랐을 뿐, 이미 옷을 만드는 기본적인 생각이 담겨 있었다.

2. 하늘 위의 추위가 만든 무스탕 재킷
시간을 훌쩍 건너 20세기로 가보자.
1920~30년대 비행기에는 지금처럼 완벽한 난방 시설이 없었다. 특히 개방형 조종석에서는 바람과 추위를 온몸으로 견뎌야 했다.
당시 비행사들에게 옷은 단순한 유니폼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장비였다.
미국 출신의 낙하산 개발자 레슬리 어빈은 영국에서 시어링 비행 재킷을 개발했다. 이후 영국 공군이 사용한 어빈(Irvin) 재킷은 두툼한 털 칼라와 가죽 벨트, 큼직한 지퍼가 특징이었다.
칼라는 목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을 막았고, 허리 벨트는 몸과 옷 사이로 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도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폭격기 승무원들도 B-3 같은 두꺼운 양털 재킷을 입었다.
지금 보면 꽤 멋진 디자인이다.
하지만 그때는 멋보다 기능이 먼저였다. 바람을 막아야 했고, 따뜻해야 했으며, 좁은 조종석에서도 움직일 수 있어야 했다.
우리가 지금 좋아하는 큼직한 털 칼라와 투박한 실루엣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3. 추위를 막던 외투가 히피의 상징이 되다
무스탕의 또 다른 이야기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시작된다.
아프가니스탄의 추운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양이나 염소 가죽으로 외투를 만들었다. 털은 안쪽에 두고 가죽 바깥에는 꽃이나 기하학무늬를 수놓기도 했다.
특히 가즈니 지역의 자수 코트가 유명하다.
두꺼운 양털에 화려한 꽃 자수라니. 기능적인 방한복이지만 그 안에는 자신을 꾸미고 싶은 마음도 들어 있었던 것 같다.

1960년대 후반, 이 아프간 코트가 런던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비틀스 같은 뮤지션들이 입으면서 자유로운 히피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두껍고 무겁고, 실루엣도 투박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몸에 꼭 맞게 재단된 정장과 달리 자유롭고 자연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 만들었던 옷이 어느새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된 것이다.

4. 우리가 무스탕이라고 부르는 옷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털이 붙은 가죽 재킷을 흔히 ‘무스탕’이라고 부른다.
해외에서는 보통 시어링 재킷(Shearling Jacket)이나 시어링 코트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프랑스어의 무통(Mouton)은 양을 뜻하는 말로, 양털 가죽 관련 소재 용어에도 쓰인다.
국내에서 익숙한 무스탕이라는 이름의 정확한 정착 과정은 분명하지 않지만, 이제는 하나의 패션 용어처럼 자리 잡았다.
과거에는 두껍고 무거운 항공 재킷의 이미지가 강했다면, 지금은 디자인도 훨씬 다양해졌다.
허리까지 오는 크롭 재킷, 발목까지 내려오는 롱코트, 곱슬거리는 털을 드러낸 빈티지 디자인까지.
특히 최근에는 가벼운 소재를 사용하거나 털을 일부에만 배치해 무게와 부피를 줄이는 디자인도 많아졌다.
형태는 계속 바뀌지만 따뜻함이라는 본래의 목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5. 어그부츠는 서퍼들의 신발이었다
무스탕이 하늘 위의 추위와 연결된다면, 어그부츠는 차가운 바다와 연결된다.
호주에서는 오래전부터 양가죽 부츠를 만들어 신었다. 발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털과 부드러운 가죽이 특징이었다.
이 신발을 특히 좋아했던 사람들이 서퍼들이었다.
차가운 바다에서 서핑을 마치고 나온 뒤 젖고 차가워진 발을 따뜻하게 감싸기에 좋았기 때문이다.
1960~70년대 호주의 서핑 문화 속에서 양가죽 부츠는 점점 인기를 얻었다.
1971년 호주에서 촬영된 뉴스 영상에는 실제 어그부츠를 만드는 모습이 남아 있다.
작업자들이 양가죽을 펼쳐 재단하고, 봉제하고, 밑창을 붙이는 과정이 그대로 담겼다.
당시에는 이미 일주일에 약 1,500켤레가 판매되고 있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이름이다.
당시 부츠를 제작했던 셰인 스테드먼은 못생겼다는 뜻의 ’어글리(Ugly)’에서 어그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회상했다.
물론 어그라는 말의 정확한 최초 유래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다.
그래도 어쩐지 잘 어울리는 이름이다.
지금처럼 매끈하게 디자인된 신발이 아니라, 필요한 기능을 갖춘 투박하고 편안한 부츠였으니까.
6. 못생긴 부츠가 세계적인 유행이 되기까지
1978년 호주 출신 서퍼 브라이언 스미스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UGG 브랜드를 시작했다.
호주에서는 익숙했던 양가죽 부츠가 미국 서퍼들에게도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잘 팔린 것은 아니었다.
여름과 해변의 이미지가 강한 캘리포니아에서 두꺼운 양털 부츠는 조금 낯선 물건이었다.
브라이언 스미스는 서퍼들을 중심으로 부츠를 알리기 시작했고, 점차 입소문이 났다.
1995년에는 데커스가 UGG 브랜드를 인수했다. 이후 2003년 오프라 윈프리의 인기 상품 소개를 계기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크게 높아졌다.
2000년대에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일상 패션에서 자주 보이는 신발이 되었다.
트레이닝복에 어그부츠를 신고 커피를 들고 걷는 모습. 한때는 그 자체가 하나의 스타일이었다.
이후 유행이 지나가는 듯했지만 어그는 다시 돌아왔다.
발목을 짧게 자른 울트라 미니, 두꺼운 플랫폼 밑창, 슬리퍼처럼 신는 태즈먼까지.
생각해 보면 디자인의 변화도 재미있다.
처음에는 발을 따뜻하게 감싸는 것이 가장 중요했지만, 이제는 신고 벗는 편리함, 다리가 길어 보이는 비율, 실내외를 넘나드는 활용성까지 고려한다.
같은 양가죽 부츠지만 시대에 따라 사람들이 원하는 기능은 조금씩 달라진 것이다.
7. 처음부터 완벽한 디자인은 없다
무스탕과 어그부츠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니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완벽한 옷은 없었다는 것이다.
외치의 코트는 여러 동물의 가죽을 이어 붙인 옷이었다. 파일럿의 재킷은 하늘 위의 추위를 견디기 위한 장비였고, 서퍼들의 어그부츠는 차가워진 발을 따뜻하게 하기 위한 신발이었다.
그 누구도 처음부터 유행을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먼저 필요한 것이 있었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형태가 만들어졌다.
15년 동안 패션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처음부터 완벽한 디자인을 그리려고 하면 오히려 손이 멈출 때가 있다.
그런데 필요한 기능을 먼저 생각하고, 샘플을 만들어 보고, 실제로 사용하면서 불편한 부분을 하나씩 고치다 보면 처음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형태가 나오기도 한다.
때로는 그 과정에서 생긴 구조나 봉제선이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이 된다.
멋있는 형태를 먼저 정하고 기능을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능을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멋있는 형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무스탕의 두툼한 털 칼라와 어그부츠의 둥글고 투박한 앞코처럼.
좋은 디자인은 꼭 처음부터 아름다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투박한 첫 번째가 있어야 두 번째, 세 번째가 있다.
올겨울 무스탕을 꺼내 입고 어그부츠를 신을 때, 5,300년 전 얼음 인간과 하늘 위의 조종사, 차가운 바다의 서퍼들을 한 번쯤 떠올려 보면 좋겠다.
우리가 지금 멋지다고 생각하는 옷들도 한때는 누군가의 불편함에서 시작되었으니까.
출처
- National Geographic, Here's What the Iceman Was Wearing When He Died 5,300 Years Ago: https://www.nationalgeographic.com/culture/article/otzi-iceman-european-alps-mummy-clothing-dna-leather-fur-archaeology
- Imperial War Museums, How a Hollywood stunt man invented an iconic RAF sheepskin jacket: https://shop.iwm.org.uk/blogs/news/how-a-hollywood-stunt-man-invented-an-iconic-raf-sheepskin-jacket
- Wikipedia, Flight jacket: https://en.wikipedia.org/wiki/Flight_jacket
- Wikipedia, Afghan coat: https://en.wikipedia.org/wiki/Afghan_coat
- Allure Korea, 겨울 아우터의 로망, 무스탕 실패 없이 입는 법: https://www.allurekorea.com/2025/12/10/%ea%b2%a8%ec%9a%b8-%ec%95%84%ec%9a%b0%ed%84%b0%ec%9d%98-%eb%a1%9c%eb%a7%9d-%eb%ac%b4%ec%8a%a4%ed%83%95-%ec%8b%a4%ed%8c%a8-%ec%97%86%ec%9d%b4-%ec%9e%85%eb%8a%94-%eb%b2%95/
- Wikipedia, Ugg boots: https://en.wikipedia.org/wiki/Ugg_boots
- Wikipedia, UGG (brand): https://en.wikipedia.org/wiki/UGG_(brand)
- LA Magazine, How the fleece-lined Ugg boot became a surfing essential: https://lamag.com/sports/how-the-fleece-lined-ugg-boot-became-a-surfing-essent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