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미쏘니 지그재그, 색으로 짠 니트

by MARIA’S CLOSET 2026. 10. 18.

패션 브랜드 중에는 로고를 보지 않아도 알아볼 수 있는 브랜드가 있다.

샤넬의 트위드 재킷, 버버리의 체크 패턴, 그리고 미쏘니의 지그재그 니트.

특히 미쏘니는 멀리서 봐도 알아볼 수 있다.

빨강, 주황, 보라, 초록.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색들이 물결처럼 이어지고, 지그재그 무늬가 반복된다.

어쩌면 조금 촌스러워 보일 수도 있는 색의 조합인데, 이상하게도 미쏘니의 니트에서는 그 모든 색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그런데 이 화려한 니트 브랜드가 처음부터 패션을 만들었던 것은 아니다.

시작은 운동선수의 트레이닝복이었다.

1. 니트 브랜드를 만든 육상 선수

지난 글 240년 니트 공장, 오래된 니트 브랜드에서 영국과 스코틀랜드의 오래된 니트 공장을 살펴봤다면, 오늘은 이탈리아의 작은 작업실 이야기다.

미쏘니의 창업자 오타비오 미쏘니(Ottavio Missoni)는 원래 육상 선수였다.

1921년 태어난 그는 400m 허들 선수로 활동했고, 1948년 런던 올림픽에도 출전했다.

그는 패션디자이너가 되기 전부터 운동복을 만들고 있었다.

1940년대 후반, 친구와 함께 니트 트레이닝복을 제작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운동복은 지금처럼 기능성 폴리에스터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울이나 면처럼 자연섬유로 만든 운동복이 많았고, 니트의 신축성은 몸을 움직이는 데 유용했다.

생각해 보면 니트는 원래부터 움직임과 가까운 소재였다.

실을 서로 엮어 만든 직물과 달리, 니트는 실을 고리 형태로 연결한다. 그래서 몸의 움직임에 따라 늘어나고 다시 돌아오는 성질이 있다.

오타비오는 운동선수였기 때문에 이런 니트의 장점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한 여성을 만나게 된다.

바로 로지타 젤미니(Rosita Jelmini)였다.

두 사람은 1953년 결혼했고, 함께 니트 사업을 시작했다.

2. 집 지하실에서 시작된 작은 니트 공장

1953년, 오타비오와 로지타는 이탈리아 갈라라테에 작은 니트 작업실을 마련했다.

작업실은 집 지하실에 있었다.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의 시작이라고 하기에는 소박한 공간이었다.

두 사람은 몇 대의 편직 기계로 니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오타비오는 실과 기계를 다루는 데 관심이 많았고, 로지타는 색상과 패턴에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지금 우리가 아는 지그재그 패턴을 만들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사용하던 기계로는 표현할 수 있는 무늬가 제한적이었다.

주로 줄무늬를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줄무늬를 가지고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색을 바꾸고, 간격을 바꾸고, 실의 조합을 달리했다.

같은 줄무늬라도 어떤 색을 옆에 놓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이 났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미쏘니의 화려한 색상 감각은 이렇게 작은 실험에서 시작되었다.

1950년대 신문 광고 속 패션 일러스트를 떠올리며.

3. 지그재그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미쏘니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편직 기계다.

1962년, 미쏘니 부부는 라셸(Raschel) 편직기를 의류 제작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라셸은 경편기의 한 종류다.

우리가 흔히 스웨터를 만드는 데 사용하는 횡편기와는 구조가 다르다.

횡편기는 실을 좌우로 움직이며 코를 형성하는 방식이고, 경편기는 여러 가닥의 실을 세로 방향으로 공급해 원단을 만든다.

라셸 기계는 실을 움직이는 방법과 가이드 바의 배열에 따라 다양한 조직과 패턴을 표현할 수 있다.

원래 숄이나 레이스 같은 원단을 만드는 데 사용되던 기계였지만, 미쏘니 부부는 이 기계로 새로운 니트 의류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계가 바뀌자 디자인도 달라졌다.

단순한 줄무늬를 넘어 물결과 지그재그, 복잡한 컬러 패턴을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기계로 실험을 거듭하면서 미쏘니를 대표하는 지그재그 패턴이 탄생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지그재그 무늬 자체를 미쏘니가 발명한 것은 아니다.

지그재그는 오래전부터 직물과 장식에 사용되던 패턴이다.

미쏘니가 특별했던 이유는 이 무늬를 니트 편직 기술과 컬러 조합으로 발전시켰다는 데 있다.

원단 위에 그림을 인쇄하는 것이 아니라, 실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무늬가 만들어진다.

니트 조직과 색상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이 특히 재미있다.

디자인을 먼저 그려 놓고 기계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계가 가진 가능성을 발견하면서 새로운 디자인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어쩌면 미쏘니의 지그재그는 디자인실의 스케치보다 편직 기계 앞에서 더 많이 발전했을지도 모른다.

4. 왜 미쏘니의 색은 촌스럽지 않을까?

미쏘니의 니트를 자세히 보면 한 가지 색이 혼자 존재하는 경우가 드물다.

빨간색 옆에 주황색이 있고, 그 옆에는 보라색이나 초록색이 이어진다.

언뜻 보면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색상들이다.

그런데 조금 떨어져서 보면 묘하게 하나의 색처럼 느껴진다.

이유 중 하나는 색의 반복과 리듬에 있다.

미쏘니는 여러 색을 무작위로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줄무늬의 폭과 색상 간격을 조절하면서 리듬을 만든다.

굵은 줄무늬 옆에 가는 줄무늬를 넣고, 밝은 색 사이에 어두운 색을 배치한다.

또 니트 특유의 표면 조직이 색의 경계를 부드럽게 만들어 준다.

평평한 종이에 인쇄된 색과 실로 짜인 색은 느낌이 다르다.

실은 빛을 받는 방향에 따라 미세한 그림자를 만들고, 표면의 요철이 색을 조금씩 다르게 보이게 한다.

그래서 미쏘니의 니트는 사진으로 볼 때보다 실제로 가까이에서 보면 더 흥미롭다.

단순히 색이 많은 것이 아니라, 색과 조직이 함께 디자인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5. 1967년, 속옷 때문에 벌어진 패션쇼 사건

미쏘니의 역사에는 꽤 유명한 사건도 있다.

1967년, 피렌체의 피티 궁전에서 열린 패션쇼였다.

당시 미쏘니는 가볍고 얇은 니트 의상을 선보였다.

그런데 런웨이에 오르기 전, 로지타는 모델들이 입은 브래지어가 얇은 니트 아래에서 보기 좋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브래지어를 벗도록 했다.

문제는 조명이었다.

무대의 강한 조명 아래에서 얇은 니트가 예상보다 투명하게 보였던 것이다.

당시에는 상당한 논란이 되었다.

이 사건으로 미쏘니는 다음 해 해당 행사에 초청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 일은 결과적으로 미쏘니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보면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1960년대 패션계에서는 꽤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이 일화에서 흥미로운 것은 단순한 노출 논란이 아니다.

미쏘니가 그만큼 가볍고 얇은 니트 소재를 실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니트는 두껍고 따뜻한 겨울옷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가볍고 유연한 패션 소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1960년대 바닷가 패션 화보를 떠올리며.

6. 니트는 무늬를 입히는 원단이 아니다

15년 동안 패션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니트를 디자인할 때 가장 재미있는 순간은 조직을 바꿔 볼 때다.

같은 실을 사용해도 편직 방법을 바꾸면 전혀 다른 표면이 나온다.

촘촘하게 짜면 매끈해지고, 코를 느슨하게 만들면 부드럽게 흐른다.

실을 교차시키면 꽈배기 무늬가 생기고, 일부 코를 비우면 구멍이 있는 레이스 조직이 만들어진다.

여기에 실의 색상까지 바꾸면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인은 훨씬 많아진다.

미쏘니는 이런 니트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단순히 니트 원단에 예쁜 무늬를 넣은 것이 아니다.

무늬를 만들기 위해 실과 편직 방법을 연구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디자인을 발견했다.

이것이 프린트 원단과 니트 조직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프린트는 완성된 원단 위에 무늬를 표현할 수 있지만, 니트는 원단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무늬와 조직을 함께 설계할 수 있다.

물론 니트에도 프린트 기법을 사용할 수 있고, 미쏘니의 모든 제품이 동일한 편직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브랜드를 상징하는 지그재그 니트에는 실과 기계를 통해 패턴을 만들어 온 역사가 담겨 있다.

나는 미쏘니의 니트를 볼 때마다 디자인을 꼭 종이 위에서만 시작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실을 만져보고, 기계를 움직여 보고, 예상하지 못했던 조직을 발견하는 과정에서도 디자인은 시작될 수 있다.

7. 70년이 넘도록 같은 무늬를 사용하는 이유

패션 브랜드는 매 시즌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

새로운 컬러, 새로운 실루엣, 새로운 소재.

그런데 미쏘니는 70년이 넘는 브랜드 역사 동안 지그재그와 다채로운 컬러라는 자신만의 언어를 꾸준히 발전시켜 왔다.

시대에 따라 무늬의 크기가 달라지고 색상도 바뀌지만, 멀리서 봐도 미쏘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이 참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브랜드를 만든다는 것은 매번 새로운 디자인을 만드는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오랫동안 반복해도 지루하지 않은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미쏘니에게는 그것이 지그재그였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줄무늬였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편직 기계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타비오와 로지타는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작은 니트 작업실에서 시작된 실험이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의 상징이 된 것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화려한 런웨이보다 그 뒤에 있는 작은 작업실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실을 바꿔 끼우고, 기계를 조정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원단을 다시 풀어보는 순간들.

어쩌면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멋진 옷들은 그런 평범한 실패와 반복 속에서 탄생했을 것이다.

미쏘니의 지그재그도 그랬다.

단순한 무늬 하나가 아니라, 실과 기계를 이해하려고 했던 두 사람의 시간이 쌓인 디자인이었다.

출처


소개 및 문의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조항

© 2026 마리아의 옷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