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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딩은 언제부터 패션이 되었을까?

by MARIA’S CLOSET 2026. 11. 3.

겨울이 되면 옷장에서 가장 자주 꺼내는 옷이 있다. 바로 패딩이다.

가볍고 따뜻하고, 코트보다 편하게 입을 수 있어 겨울에는 거의 매일 손이 간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가 입는 이 볼록볼록한 패딩은 언제부터 만들어졌을까?

그리고 처음에는 추위를 막기 위해 만들었던 옷이 어떻게 명품 브랜드의 런웨이까지 올라가게 되었을까?

패딩의 역사를 찾아보니 생각보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산악인의 생존을 위한 옷이었고, 어느 순간에는 조각 작품처럼 아름다운 옷이 되었으며, 힙합 문화에서는 개성을 표현하는 패션이 되었다.

오늘은 약 100년 전으로 돌아가 패딩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1. 1922년, 에베레스트에 나타난 이상한 옷

1922년 영국의 에베레스트 원정대.

당시 산악인들은 주로 울이나 두꺼운 직물로 만든 옷을 여러 겹 입었다.

그런데 호주 출신 산악인 조지 핀치(George Finch)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무거운 옷을 여러 겹 입는 대신, 가벼운 옷 안에 솜털을 넣으면 어떨까?

그는 다운을 넣은 방한 재킷을 준비했고, 실제 에베레스트 원정에서 착용했다.

당시에는 꽤 낯선 옷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중요한 발상이었다.

옷을 무겁게 만드는 대신 공기를 가두어 따뜻하게 만드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핀치가 역사상 처음으로 새의 솜털을 방한에 사용한 사람은 아니다. 사람들은 훨씬 이전부터 깃털과 솜털을 보온 재료로 사용해 왔다.

다만 그의 재킷은 현대적인 고산용 다운재킷의 초기 사례로 의미가 있다.

패딩은 처음부터 멋을 위한 옷이 아니라, 추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옷이었다.

2. 1936년, 패딩에 다이아몬드 무늬가 생긴 이유

1930년대 미국의 아웃도어 용품 사업가 에디 바우어(Eddie Bauer)는 겨울 낚시 중 저체온증으로 위험한 경험을 했다.

그는 무거운 울 재킷을 대신할 가볍고 따뜻한 옷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개발한 제품이 1936년에 선보인 다운재킷이다.

이후 스카이라이너(Skyliner)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재킷에는 다이아몬드 형태의 퀼팅이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왜 굳이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봉제했을까?

이유는 충전재 때문이다.

다운을 옷 안에 그냥 넣으면 움직이면서 한쪽으로 몰릴 수 있다.

그래서 봉제선으로 공간을 나누고, 그 안에 충전재를 일정하게 배치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것이 퀼팅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오늘날 패딩에서 흔히 보는 가로줄, 세로줄, 다이아몬드 무늬 역시 충전재를 제자리에 유지하는 기능과 관련이 있다.

물론 퀼팅 자체는 훨씬 오래된 섬유 기술이다. 에디 바우어가 퀼팅을 처음 발명한 것은 아니다.

그가 중요한 이유는 퀼팅과 다운을 결합한 실용적인 아우터를 개발하고 보급하는 데 기여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의 시선에서 보면 이 부분이 참 재미있다.

지금은 디자인처럼 보이는 패딩의 봉제선이 원래는 기능을 위한 구조였다는 것.

3. 1937년, 패딩이 아름다운 드레스처럼 변하다

1937년에는 전혀 다른 패딩이 등장한다.

패션디자이너 찰스 제임스(Charles James)가 만든 다운 이브닝 재킷이다.

그는 하얀 실크 새틴 안에 솜털을 넣어 부풀어 오른 형태의 재킷을 만들었다.

산악인의 다운재킷과는 완전히 다른 옷이었다.

목과 어깨를 감싸는 커다란 볼륨, 조각처럼 이어지는 곡선, 그리고 부드러운 실크 표면.

추위를 막기 위해 사용하던 충전재가 아름다운 실루엣을 만드는 재료로 바뀐 순간이었다.

나는 이 옷이 특히 흥미롭다.

옷을 디자인할 때 우리는 보통 원단을 재단하고 봉제해 형태를 만든다.

그런데 패딩은 조금 다르다.

원단과 원단 사이에 충전재를 넣어 입체적인 형태를 만들 수 있다.

어디에 충전재를 많이 넣고 어디에 적게 넣느냐에 따라 실루엣이 달라진다.

찰스 제임스는 이런 패딩의 특징을 기능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해석했다.

오늘날 런웨이에서 보는 과장된 볼륨의 패딩도 이 디자인과 연결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4. 1950-60년대, 패딩은 산에서 도시로 내려왔다

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다.

고산 등반이 대중의 관심을 받으면서 극한의 추위에 대응하는 기능성 의류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1952년 프랑스에서 시작한 몽클레르(Moncler)는 1954년 K2 원정대에 다운재킷을 공급했다.

1968년 그르노블 동계올림픽에서는 프랑스 알파인 스키팀의 공식 공급업체가 되었다.

패딩은 점차 전문 산악 장비에서 스키복과 스포츠웨어로 영역을 넓혀 갔다.

이 시기에 중요한 변화는 기능성 소재와 패턴 설계였다.

몸을 따뜻하게 보호하는 것뿐 아니라 팔을 움직이기 편해야 했고, 눈과 바람에도 대응해야 했다.

패딩은 더 이상 단순히 두꺼운 옷이 아니었다.

가볍고 움직이기 편하면서도 보온성을 유지해야 하는 기술적인 옷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5. 1970년대, 침낭이 코트가 되다

패딩의 역사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는 디자인은 노마 카말리(Norma Kamali)의 슬리핑백 코트다.

노마 카말리는 캠핑 중 침낭에서 영감을 받아, 몸을 감싸는 커다란 패딩 코트를 만들었다.

1973년 처음 선보인 이 디자인은 말 그대로 침낭을 입은 듯한 형태였다.

길고 넉넉한 실루엣, 두툼한 충전재, 몸 전체를 감싸는 구조.

지금 보면 익숙한 롱패딩과 닮은 부분도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실험적인 패션이었다.

여기서 패딩은 또 한 번 변화한다.

산악인에게는 생존을 위한 옷이었고, 찰스 제임스에게는 조각 같은 아름다움을 만드는 재료였다면, 노마 카말리에게는 일상에서 편안하게 몸을 감싸는 새로운 코트가 된 것이다.

기능과 패션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디자인이었다.

6. 1990년대, 패딩이 스트리트 패션이 되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패딩은 또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특히 미국의 힙합 문화와 스트리트 패션에서 볼륨 있는 패딩이 인기를 얻었다.

토미 힐피거(Tommy Hilfiger)의 컬러풀한 패딩과 노스페이스(The North Face)의 눕시(Nuptse) 같은 제품은 기능성 아우터를 넘어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커다란 실루엣, 선명한 컬러, 눈에 띄는 로고.

이제 패딩은 단순히 따뜻한 옷이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옷이 되었다.

이전까지 패딩의 볼륨은 보온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면, 스트리트 패션에서는 그 볼륨 자체가 스타일이 되었다.

7. 2000년대 이후, 패딩은 가벼워지고 더 커졌다

이후 패딩은 서로 다른 두 방향으로 발전했다.

하나는 가볍고 얇아지는 방향이다.

원단과 충전재 기술이 발전하면서 얇은 나일론 원단에 가벼운 다운을 넣은 경량 패딩이 대중화되었다.

접어서 작은 파우치에 넣을 수 있는 패딩도 등장했다.

다른 하나는 패딩의 볼륨을 더욱 과장하는 방향이다.

몽클레르와 발렌시아가 같은 럭셔리 브랜드는 패딩을 단순한 방한복이 아니라 하나의 패션 실루엣으로 표현했다.

어깨를 크게 만들거나, 몸을 감싸는 볼륨을 과장하거나, 새로운 소재와 컬러를 적용했다.

한쪽에서는 최대한 가볍게 만들고, 다른 한쪽에서는 패딩 특유의 부피를 디자인으로 강조했다.

같은 패딩이지만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한 것이다.

8. 2026년 겨울, 패딩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2026년 가을·겨울 컬렉션을 살펴보면 패딩은 여전히 다양한 방식으로 등장한다.

특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조각처럼 표현한 볼륨이다.

패딩의 부풀어 오른 형태를 감추기보다 디자인의 중심으로 사용한다.

단순히 두꺼운 옷이 아니라 어깨와 소매, 몸판의 볼륨을 조절해 독특한 실루엣을 만든다.

두 번째는 소재와 표면의 변화다.

기능성 나일론뿐 아니라 광택 있는 소재, 패턴이 들어간 원단, 장식적인 표면을 활용한다.

패딩이 반드시 스포츠웨어처럼 보여야 한다는 공식에서 벗어난 것이다.

세 번째는 일상복과 기능성 의류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이다.

가벼운 테크니컬 아우터와 아노락, 패딩 재킷을 일상적인 옷과 함께 스타일링한다.

등산복에서 출발한 디자인이 다시 도시의 옷으로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다만 모든 패딩이 과장된 볼륨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짧고 간결한 패딩, 가벼운 경량 재킷, 클래식한 퀼팅 디자인도 여전히 일상에서 중요한 선택지다.

9. 패딩의 역사를 알고 나니 다르게 보인다

패딩의 역사를 따라가 보니 우리가 매일 입는 겨울옷 한 벌에도 꽤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1920년대에는 산악인의 생존을 위한 옷이었고, 1930년대에는 다운을 안정적으로 담아내는 구조가 발전했다.

그리고 디자이너들은 그 구조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침낭이 코트가 되고, 산악복이 스트리트 패션이 되고, 이제는 런웨이에서 하나의 조각 작품처럼 표현되기도 한다.

오랫동안 옷을 디자인하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새로운 디자인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갑자기 탄생하지 않는다.

과거의 기능과 형태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변화한다.

패딩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무심코 입는 패딩의 볼록한 퀼팅 한 줄에도 오랜 시간 축적된 디자인의 역사가 담겨 있다.

옷에도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를 알고 입으면 평범한 겨울 패딩 한 벌도 조금 특별하게 느껴진다.


다음 글에서는 패딩 안에 들어 있는 충전재를 살펴보려고 한다. 구스다운과 덕다운, 필파워와 충전량, 그리고 패딩 라벨에 적힌 숫자가 실제로 어떤 의미인지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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