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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 이야기, 옷을 사지 말라는 회사

by MARIA’S CLOSET 2026. 10. 16.

작은 대장간에서 시작된 브랜드가 지구를 생각하기까지

옷을 파는 회사가 "우리 옷을 사지 마세요"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마케팅의 한 방법이겠거니 생각했다. 옷을 팔아야 하는 회사가 옷을 사지 말라니. 꽤 영리한 광고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파타고니아의 역사를 들여다보니 조금 달랐다.

이 회사는 처음부터 옷을 만들던 회사도 아니었고, 창업자는 패션디자이너도 아니었다.

그저 산을 좋아하고, 바위를 오르는 것이 좋았던 한 등반가에게서 시작된 회사였다.

친환경 이야기를 할 때 빠지지 않는 브랜드, 파타고니아.

오늘은 이 회사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왜 환경을 생각하는 브랜드가 되었는지, 그리고 15년 동안 옷을 만들어 온 디자이너로서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1. 작은 대장간에서 시작된 파타고니아

1957년, 미국 캘리포니아.

열여덟 살의 이본 쉬나드는 암벽등반에 푹 빠져 있었다.

그런데 당시 등반 장비는 비쌌고, 마음에 드는 장비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만들기로 했다.

중고 석탄 화덕과 모루를 구해 쇠를 달구고 두드렸다. 그렇게 만든 것이 '피톤(Piton)'이라는 등반 장비였다.

피톤은 바위 틈에 박아 밧줄을 고정하는 쇠못 같은 장비다.

쉬나드는 자신이 만든 피톤을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며 다른 등반가들에게 팔았다.

장사는 제법 잘됐다.

1965년에는 톰 프로스트와 함께 장비 사업을 발전시켰고, 쉬나드 이큅먼트는 미국에서 손꼽히는 등반 장비 회사로 성장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등반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바위가 망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피톤을 바위에 박았다 빼는 일이 반복되자, 아름답던 암벽에는 균열과 상처가 남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자연을 자신이 만든 장비가 망가뜨리고 있었다.

쉬나드는 고민 끝에 가장 잘 팔리던 제품인 피톤 중심의 사업에서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1972년, 바위 틈에 끼웠다가 빼낼 수 있는 알루미늄 장비를 소개하며 바위를 덜 훼손하는 '클린 클라이밍(Clean Climbing)'을 적극적으로 알렸다.

회사의 주요 수익원이던 제품을 스스로 줄이는 결정이었다.

나는 이 이야기가 참 인상적이었다.

보통 회사라면 잘 팔리는 제품을 더 많이 만들려고 할 텐데, 쉬나드는 자신이 만든 제품이 자연을 해친다는 이유로 다른 방법을 찾았다.

파타고니아의 환경 철학은 거창한 선언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바위를 지키고 싶었던 한 사람의 고민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2. 럭비 셔츠 한 벌이 의류 브랜드가 되다

그런데 등반 장비를 만들던 회사가 어떻게 옷을 만들게 되었을까?

여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1970년, 쉬나드는 스코틀랜드로 등반 여행을 갔다가 럭비 셔츠 한 벌을 구입했다.

원래 럭비 선수들이 입는 옷이었는데, 막상 등반할 때 입어 보니 꽤 괜찮았다.

원단은 튼튼했고, 목에 달린 칼라는 등반 장비의 끈이 피부에 쓸리는 것을 막아줬다.

게다가 색깔도 화려했다.

당시 등반복은 비교적 단조로운 색상이 많았는데, 럭비 셔츠는 선명한 줄무늬가 들어간 옷이었다.

미국으로 돌아와 그 옷을 입고 다니자 주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옷 어디서 샀어?"

그렇게 럭비 셔츠를 수입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이후 장갑과 모자, 재킷 등으로 의류 사업을 조금씩 넓혀갔다.

나는 이 이야기가 디자이너로서 특히 재미있었다.

새로운 옷을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특별한 형태를 고안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존재하던 럭비복에서 등반에 필요한 기능을 발견한 것이다.

럭비 선수의 목을 보호하던 칼라가 등반가의 목도 보호할 수 있다는 사실.

결국 좋은 디자인은 꼭 새로운 형태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물건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데서도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디자인을 하면서 자주 듣는 말인데, 파타고니아의 시작이야말로 이 말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3. 왜 이름이 '파타고니아'일까?

파타고니아는 실제 지명이다.

남아메리카의 아르헨티나와 칠레 남부에 걸쳐 있는 지역으로, 거대한 산맥과 빙하, 거친 바람으로 유명한 곳이다.

1968년, 쉬나드는 친구들과 함께 남아메리카로 여행을 떠났다.

그들은 파타고니아의 피츠로이산에 올라 새로운 등반 루트를 개척했다.

끝없이 펼쳐진 산과 빙하, 거친 자연은 쉬나드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1973년, 의류 브랜드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그 지역의 이름을 가져왔다.

'Patagonia.'

자신의 이름을 붙이는 대신, 자신이 사랑했던 자연의 이름을 브랜드에 붙인 것이다.

이름을 정한 이유도 흥미롭다.

어느 나라 말로도 발음하기 쉽고, 듣기만 해도 빙하와 거친 산봉우리, 먼 곳의 낭만이 떠오르는 이름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파타고니아라는 이름에는 먼 곳으로 떠나는 여행과 모험, 아직 손대지 않은 자연의 이미지가 있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산맥 모양의 로고 역시 피츠로이산의 실루엣에서 영감을 받았다.

브랜드의 이름부터 로고까지 자연에서 시작된 셈이다.

4.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

2011년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

1년 중 가장 많은 물건이 팔리는 날이다.

모든 브랜드가 할인 광고를 내걸고 소비자에게 더 많이 사라고 이야기하던 날, 파타고니아는 뉴욕타임스에 조금 이상한 광고를 실었다.

자사의 인기 재킷 사진 위에 큼지막하게 적힌 문구.

"Don't Buy This Jacket."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

처음 보면 무슨 말인가 싶다.

옷을 판매하는 회사가 옷을 사지 말라니.

광고에는 재킷 한 벌을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물과 자원이 사용되는지,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가 배출되는지가 설명되어 있었다.

광고에 따르면 이 재킷 한 벌을 만드는 데 45명이 하루에 마실 수 있는 135리터의 물이 쓰였고, 재킷 무게의 24배에 달하는 약 9k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필요한 옷이 아니라면 사지 말라고 했다.

이미 가지고 있는 옷을 오래 입고, 망가지면 고쳐 입으라고 했다.

물론 이 광고는 엄청난 화제가 됐다.

브랜드 인지도는 높아졌고, 매출도 성장했다. 결국 옷을 사지 말라는 광고가 더 많은 옷을 팔게 만든 셈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나 역시 처음에는 조금 의아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소비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었다.

'정말 이 옷이 필요한가?'

우리는 옷을 사기 전에 얼마나 자주 이런 질문을 할까.

세일하니까 사고, 유행하니까 사고, 지난해 옷이 조금 지겨워졌다는 이유로 또 새 옷을 산다.

옷을 만드는 사람인 나 역시 그런 소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이 광고가 조금 불편하면서도 오래 기억에 남았다.

광고 원본은 아래 출처의 파타고니아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5. 페트병으로 플리스를 만들고, 오래된 옷을 고치다

파타고니아는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광고에서만 하지 않았다.

1993년에는 버려진 플라스틱병을 재활용한 폴리에스터 플리스 제품을 선보였다.

지금은 재활용 폴리에스터가 익숙한 소재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새로운 시도였다.

1996년부터는 일반 면 대신 유기농 방식으로 재배한 면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면 재배 과정에서 사용되는 농약과 화학물질이 토양과 물에 미치는 영향을 줄이기 위한 결정이었다.

1985년부터는 매출의 1%를 자연환경 보호를 위해 기부해 왔다.

이익의 1%가 아니라 매출의 1%다.

회사가 돈을 많이 벌든 적게 벌든, 매출을 기준으로 환경 보호를 지원하겠다는 약속이었다.

2002년에는 다른 기업들도 이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1% for the Planet'이라는 단체를 공동 설립했다.

하지만 내가 가장 관심 있게 본 것은 '원 웨어(Worn Wear)'라는 프로그램이다.

오래된 파타고니아 옷을 수선하고, 중고 제품을 다시 판매하고, 소비자가 직접 옷을 고칠 수 있도록 수선 방법을 알려주는 활동이다.

미국 네바다주 리노에는 대규모 의류 수선 시설도 운영하고 있다.

새 옷을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가 오래된 옷을 고치는 일에 이만큼 공을 들인다는 것이 신기했다.

생각해 보면 옷은 참 이상한 물건이다.

조금 낡았다는 이유로 버리기도 하지만, 어떤 옷은 10년이 지나도 버리지 못한다.

오히려 오래 입을수록 몸에 익숙해지고, 그 옷에 담긴 기억 때문에 더 좋아지기도 한다.

파타고니아는 그런 옷의 가치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6. "이제 지구가 우리의 유일한 주주입니다"

2022년 9월, 파타고니아는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창업자 이본 쉬나드와 그의 가족이 약 30억 달러 가치로 평가되던 회사의 소유권을 새로운 구조로 이전한 것이다.

회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의결권 주식 약 2%는 파타고니아 퍼포스 트러스트라는 신탁에, 나머지 비의결권 주식 약 98%는 환경 보호 활동을 위한 비영리 단체 홀드패스트 컬렉티브에 넘겼다.

회사는 계속 사업을 운영하되, 사업에 재투자하고 남은 이익을 환경 보호와 기후 위기 대응에 사용하도록 한 것이다.

당시 파타고니아 홈페이지에는 이런 문장이 올라왔다.

"Earth is now our only shareholder."

이제 지구가 우리의 유일한 주주입니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는 꽤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회사의 소유 구조까지 바꾸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회사를 상장하거나 매각해 개인의 부를 늘리는 대신, 회사가 앞으로 벌어들일 돈이 환경을 위해 쓰이도록 구조를 만든 것이다.

물론 이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회사가 존재하는 목적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결정인 것은 분명하다.

7. 파타고니아도 완벽한 친환경 브랜드는 아니다

그렇다고 파타고니아가 환경에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 회사는 아니다.

아웃도어 의류에는 여전히 폴리에스터나 나일론 같은 합성섬유가 사용된다.

재활용 소재라고 해도 생산 과정에서 에너지와 물이 필요하고, 세탁 과정에서는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할 수 있다.

옷을 생산하고 전 세계로 운송하는 과정에서도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아무리 친환경적인 소재를 사용해도 옷을 만드는 행위 자체가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파타고니아 역시 이러한 모순을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파타고니아를 '환경에 좋은 옷을 만드는 회사'라고 단정하기보다, '환경에 덜 해로운 옷을 만들기 위해 계속 방법을 찾는 회사'라고 표현하고 싶다.

완벽한 소재를 찾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옷을 만드느냐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8. 15년 차 패션디자이너가 파타고니아에서 배우고 싶은 것

15년 동안 패션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수많은 옷과 가방을 디자인했다.

매 시즌 새로운 컬러를 찾고,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고, 기존 제품과는 다른 디테일을 만들어야 했다.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일은 여전히 재미있다.

그런데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왜 이렇게 많은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야 할까?

작년에 만들었던 제품이 아직 충분히 좋은데, 올해는 또 다른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유행이 바뀌었다는 이유로 멀쩡한 디자인이 오래된 디자인이 되기도 한다.

파타고니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가장 오래 생각한 부분은 친환경 소재도, 기부금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오래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한다는 것.

튼튼한 원단을 선택하고, 쉽게 망가지지 않는 구조를 만들고, 지퍼나 단추가 고장 나면 교체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불필요한 장식을 줄이고, 실제로 필요한 기능을 고민하는 것.

나는 가방을 디자인할 때도 형태보다 기능을 먼저 생각하려고 한다.

스트랩 하나가 손잡이가 되기도 하고, 결합 방식에 따라 다른 형태의 가방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굳이 여러 개의 가방을 만들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나의 제품이 여러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 오래 사용하게 만드는 디자인의 한 방법이 아닐까.

물론 이런 디자인이 곧바로 친환경 제품이 된다는 뜻은 아니다.

소재와 생산 방식, 내구성, 실제 사용 기간까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디자인을 시작하는 질문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더 새롭게 보일까?'에서

'어떻게 하면 더 오래 사용할 수 있을까?'로.

9. 가장 친환경적인 옷은 이미 내 옷장에 있다

파타고니아는 1973년에 탄생했으니 이제 50년이 넘은 브랜드다.

작은 대장간에서 쇠를 두드리던 등반가가 만든 회사가 세계적인 아웃도어 브랜드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한 가지 생각을 오랫동안 지켜왔다는 점이다.

자연을 좋아한다면 자연을 망가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

말로는 쉬운 이야기다.

하지만 실제로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고, 회사를 운영하면서 그 생각을 지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앞으로도 새로운 옷과 가방을 만들 것이다.

그게 내가 좋아하고, 오랫동안 해온 일이니까.

다만 조금 다른 마음으로 만들고 싶다.

한 계절 쓰고 버리는 물건보다 오래 곁에 두고 싶은 물건.

처음 봤을 때 예쁜 것뿐 아니라,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쓰기 좋은 물건.

그리고 언젠가 낡더라도 쉽게 버리지 않고 고쳐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물건.

우리가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꼭 새로운 친환경 제품을 구매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미 가지고 있는 옷을 한 번 더 입고, 망가진 가방을 고쳐 쓰고, 새로운 물건을 사기 전에 잠깐 고민하는 것.

어쩌면 가장 친환경적인 옷은 새로운 기술로 만든 옷이 아니라, 이미 내 옷장 안에 있는 옷일지도 모른다.

파타고니아가 오랫동안 던져 온 질문도 결국 이것이 아닐까.

우리는 정말 새로운 옷이 필요한 걸까?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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